명나라 복건(福建) 연강(連江) 사람. 자는 계립(季立)이고, 호는 일재(一齋) 또는 온림산농(溫林山農), 자야자(子野子)다. 만력(萬曆) 연간에 제생(諸生)으로 종군(從軍)했는데, 유대유(兪大猷)가 막하로 불려 병법을 가르쳤다. 유격장군(遊擊將軍)에 올라 계(薊)에서 10년 동안 주둔하면서 조하천제조(潮河川提調)와 계진삼둔거병전영유격장군(薊鎭三屯車兵前營游擊將軍)을 지냈다. 유대유가 죽자 척계광(戚繼光)도 파직되었다. 이미 일이 돌이킬 수 없다고 보고 사직한 뒤 돌아와 노서생(老書生)으로 행세했다.
고금음(古今音)의 동이(同異)를 고증하여 후세 음운(音韻)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거처하던 세선당(世善堂)에는 장서가 대단히 많았다. 일찍이 오악(五嶽)와 양월(兩粵)을 다니면서 『기심집(寄心集)』과 『오악양월유초(五嶽兩粵游草)』를 지었다. 저서에 『복희도찬(伏羲圖贊)』과 『모시고음고(毛詩古音考)』, 『상서소연(尙書疏衍)』, 『독시졸언(讀詩拙言)』, 『굴송고음의(屈宋古音義)』, 『송헌재집(松軒齋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