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3일 일요일

李白의 《烏棲曲》、《臨江王節士歌》、《司馬將軍歌》

∎烏棲曲

姑蘇臺上烏棲時,
吳王宮裏醉西施。
吳歌楚舞歡未畢,
青山欲銜半邊日。
銀箭金壺漏水多,
起看秋月墜江波。
東方漸高奈樂何!

姑蘇臺 위로 까마귀 깃들려 할 제
吳王은 궁중에서 西施와 함께 취해 있었네.
吳나라 노래와 楚나라 춤 즐거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靑山은 어느덧 반쪽 해 머금었네.
은 바늘의 금 항아리에는 물시계 물 많이 떨어져
일어나 보니 가을달 강물 속으로 떨어지네.
東方에 해 점점 솟아 오르니 즐거움 어찌하나.


《樂府詩集》에 실린 淸商曲辭 西曲歌로,《李太白集》3권에도 실려 있다. 이 시는 春秋時代 吳王 夫差의 故事를 빌어 즐거움이 지극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내용을 읊은 것이나 실제로는 玄宗이 궁정에서 온갖 淫行을 자행함을 풍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두 구마다 韻을 바꾸고 마지막을 單句로 맺어 餘韻의 묘미가 있다.
崔鳴吉〈1586(선조 19)-1647(인조 25)〉의《遲川集》2권에 실려 있는〈烏棲曲〉에 “西施가 취하여 졸음을 머금으니 옥비녀 반쯤 빠져 구름같은 머리 기울었네. 궁중의 행락 밤낮으로 이어지니 물시계 금 항아리에 다하고 서늘한 달도 기울었네.[西施欲醉含睡癡 玉釵半脫雲鬢欹 宮中行樂日復夜 漏盡金壺凉月墮]”라는 시구가 보인다.

http://db.cyberseodang.or.kr/front/sabuList/BookContent.do?mId=m01&bnCode=jti_4c0501&titleId=C242


∎臨江王節士歌

洞庭白波木葉稀 동정호에 흰 물결일고 나뭇잎은 성근데
燕鴻始入吳雲飛 연(燕)나라 기러기 날아들자 오(吳)나라의 구름 날리네.
吳雲寒 오나라의 구름 차가우니
燕鴻苦 연나라의 기러기 괴로워라.
風號沙宿瀟湘浦 바람 몰아치는 소상(瀟湘) 포구 모래에서 잠자며
節士悲秋淚如雨 꿋꿋한 장사는 가을 겨워 눈물이 비와 같네.
白日當天心 빛나는 해 중천에 떠올라
照之可以事明主 훤히 비춰주니 밝은 임금 섬길 만하겠네.
壯士憤 장사 노하니
雄風生 거센 바람 일어나네.
安得倚天劍 어이하면 천검(天劍)에 의지하여
跨海斬長鯨 바다 가로타고 큰 고래 벨꼬.


∎司馬將軍歌[4]

狂風吹古月,미친 바람은 오랑캐 땅에 불고,
竊弄章華臺。몰래 장화대를 희롱하는고.
北落明星動光彩,북락 밝은 별은 광채를 일으키는데.
南征猛將如雲雷。남으로 정벌간 맹장은 운뢰같구나.
手中電擊倚天劍,손에는 의천검 번개처럼 번쩍이고,
直斬長鯨海水開。곧바로 큰 고래를 자르니 바닷물이 갈라진다.
我見樓船壯心目,내가 누선들을 보니 눈과 마음을 장쾌하게 하는게,
頗似龍驤[1]下三蜀。용양장군이 배 끌고 삼촉으로 내려가는 것 같다네.
揚兵習戰張虎旗,병사들 이끌고 싸움 익히며 호기를 드날리기,
江中白浪如銀屋。강에는 흰 파랑이 이는 것이 은으로 만든 집 같다네.
身居玉帳臨河魁[2],몸은 옥장에 거하며 하괴에 임하였고,
紫髯若戟冠崔嵬,붉은 수염은 창과 같고 관은 우뚝하여라.
細柳開營揖天子,세류영 영문 열고 천자께 읍하노니,
始知灞上爲嬰孩[3]。비로소 패상의 군영은 애들같음을 알겠소.
羌笛橫吹阿嚲回,강적은 〈아타회〉를 불어 대고
向月樓中吹落梅。향월루엔 〈낙매곡〉을 불고 있구나.
將軍自起舞長劍,장군께선 일어나 장검을 휘두르시자,
壯士呼聲動九垓。장사들이 외치는 소리에 구해가 들썩인다.
功成獻凱見明主,공을 세워 개선하며 명주를 뵈옵고,
丹青畫像麒麟臺。기린대에 단청화상 장군의 얼굴도 그려지네.

[1]진나라의 용양대장(龍驤大將) 왕준(王濬)을 말한다. 왕준이 누선을 만들어 타고 오(吳)나라를 정벌하러 갔는데, 오나라 군사들이 철쇄(鐵鎖)를 설치해 가로막았다. 그러자 다시 큰 뗏목을 만들어 불에 태워 철쇄를 녹인 다음 진격하여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晉書 卷42 王濬列傳》
[2]하괴(河魁)는 도성을 호위하는 대장의 막사를 뜻한 것인데, 고대에 주장이 막사를 설치하는 방위이다. 송(宋)나라 장호(張淏)가 저술한 《운곡잡기(雲谷雜記)》 〈옥장(玉帳)〉에 “술(戌) 방향이 하괴인데, 주장의 막사는 마땅히 술 방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3]서한(西漢)의 장군 주아부(周亞夫)의 군영 이름인 세류영(細柳營)의 준말이다. 한 문제(漢文帝)가 종정(宗正) 유례(劉禮)와 축자후(祝玆侯) 서려(徐厲), 하내수(河內守) 주아부를 장군으로 삼아 각각 패상(覇上)과 극문(棘門), 세류(細柳)에 군영을 설치하게 하였는데, 패상과 극문의 진영을 순시할 때는 곧장 말을 치달려 군문(軍門) 속으로 들어가서 극진한 환영을 받았다가, 세류에 도착해서는 삼엄한 군기로 인해 문 앞에서부터 저지를 당하자, “여기야말로 진짜 장군의 군영이다. 조금 전에 다녀온 패상과 극문의 군대는 아이들 장난과 같았다.〔嗟乎 此眞將軍矣 曩者覇上棘門軍 若兒戱耳〕”라고 탄식한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57 絳侯周勃世家》
[4]전조(前趙)의 군주 유요(劉曜; ?~329)가 서진(西晉)의 맹장 진안(陳安; ?~323)을 기려 만든 노래였다고 하며, 잡가요사(雜歌謠辭) 중의 하나이다. 사마장군(司馬將軍)은 진왕(晉王) 사마보(司馬寶)의 장수였던 진안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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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일 토요일

李商隱과 桂林

桂林山水甲天下라는 말은 남송의 王正功의 말에서 유행하기 시작. 계림은 당대에 여전히 벽지로 지금처럼 관광으로 유명한 명승지는 아니었다.

이상은이 계림에 오게된 계기는 아마도 당시 牛李黨爭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제되거나 배신자로 낙인찍혀 경사에서의 생활이 불편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때마침 鄭亞가 계림의 자사로 가면서 이상은은 그의 막료에 들어가게 된다. 아래 시에서 당시의 배경에 대한 이상은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謝往桂林至彤庭竊詠

辰象森羅正,해와 달 오성이 펼쳐 떠 바르고,
句陳翊衛寬。구진성이 널리 보위하네.
魚龍排百戲,어룡은 백희로 늘어섰고,
劍佩儼千官。검을 찬 천관이 의젓하다.
城禁將開晚,궁성은 삼엄하여 문 열리기 더디고,
宮深欲曙難。궁궐이 깊어 날 밝기가 어려운데.
月輪移枍詣,달무리는 예예전(枍詣殿)에 옮겼고요,
仙路下欄幹。신선이 다니느 길 난간에 내렸네.
共賀高禖應,후사를 구하는 고매가 응함에 함께 축하하고,
將陳壽酒歡。장차 수주를 올려 기뻐하리.
金星壓芒角,금성이 망각을 누르고,
銀漢轉波瀾。은하는 물결 뒤처민다.
王母來空闊,서왕모는 공활한 풍경 속에 오고,
羲和上屈盤。희화는 구불거리는 곳까지 오르네.
鳳凰傳詔旨,봉황이 소식을 전하고저,
獬廌冠朝端。해태는 조정에
造化中台座,
威風上將壇。위풍스레 장단(將壇)에 오르네.
甘泉猶望幸,
早晚冠呼韓。

∎離席

出宿金尊掩,출숙할 때 금술잔은 가려져있고.
從公玉帳新。공을 따라 (계림으로)갈때 옥장이 새롭다오.
依依向餘照,어렴풋이 석양빛 향하노니,
遠遠隔芳塵。아득해라 경사는 가로막히네.
細草翻驚雁,가는 풀에 놀란 기러기 날아가고,
殘花伴醉人。남은 꽃은 취한 사람과 함께구나.
楊朱不用勸,방향 잃은 양주야 권면할 것 뭐있소,
只是更沾巾。다만 수건에 눈물 더 적시려니.


계림에 도착한 의산은 계림의 풍경과 풍속을 두고 이렇게 읊었다. 


∎桂林

城窄山將壓,성은 좁은데 산이 누르내리는 듯.
江寬地共浮。강은 넘실거려 넓은데 땅이 함께 부유하는 듯.
東南通絕域。동남은 벽지로 서로 통하고.
西北有高樓。서북에는 높은 누대들 있다.
神護青楓岸,신은 청풍의 언덕을 보우하고,
龍移白石淑。용은 백석담으로 옮기지.
殊鄉竟何禱,이 낯선 타향엔 어떻게 기도하는고,
蕭鼓不曾休。소고가 일찌기 쉴새 없이 울리는데. 


∎即日

桂林聞舊說,옛말에 계림에 대해 들어보니,
曾不異炎方。더운 지방과 다를 바 없다는데.
山響匡牀語,산에는 침상 위에서 울리는 메아리 소리 듣고,
花飄度臘香。꽃은 겨울 지나 봄을 향해 향기 나부끼네.
幾時逢雁足,언제나 기러기 발 속의 편지를 만나보겠소,
著處斷猿腸。간 곳 마다 간장이 끊어지는듯 한데.
獨撫青青桂,푸르디 푸른 계수를 홀로 어루만지며,
臨城憶雪霜。성에 다다라 눈과 서리 내릴 장안을 떠올리네. 


∎晩晴 

深居俯夾城,  깊은 거처에서 협성을 내려볼 제,
春去夏猶淸。봄 가고 여름왔지만 오히려 상쾌해.
天意憐幽草,  천의는 그윽한 풀들을 아끼는고,
人間重晩晴。인간 세상엔 저물녘 개인 날씨가 좋아라.
幷添高閣迥,  더욱이 높은 누각 멀리까지
微注小窓明。작은 창엔 석양빛이 들이친다.
越鳥巢乾後,  남방의 새 둥지 마른 후에,
歸飛體更輕。날아 돌아올 땐 몸 더욱 가벼우려나.

-------------------------------------未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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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商隱의 無題詩

이상은의 무제시는 그의 독창적 예술 성과 중 하나다. 전당시에 보이는 이상은 이전의 무제시는 盧綸가 칠언율시로 지은 무제시 한 편 뿐이다.


    恥將名利托交親,只向尊前樂此身。
  才大不應成滯客,時危且喜是閑人。
  高歌猶愛思歸引,醉語惟誇漉酒巾。
  □□□□□□□,豈能偏遣老風塵。

盧綸이 쓴 이 시는 본래 제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시구도 일실되고 완전하지 않아 후인들이 딱히 제목할 수 없어 무제라고 한 듯하다. [1] 마찬가지로 이상은과 같은 시기지만 연배로는 의산보다 조금 많은 이덕유의 오언절구인 무제가 있지만, 劉學鍇선생은 의산의 무제보다는 늦게 써졌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이상은의 시 중, 무제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것은 14수다. 옛부터 어떤 것을 무제시로 확정할 것인가는 시인들과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본래 제목이 있었지만 나중에 그 제목을 알 수 없는 失題의 경우가 무제시로 읽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확언할 수 있는 14수의 무제시에는 오언고시, 칠언고시, 오륙언소율 등이 각 1수고 , 오언율시2수, 칠언율시6수, 칠언절구3수 등이다. 이 중 칠언율시가 절반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張采田은 무제시란 7언율시로 쓰여야만 비로소 그 완곡한 정을 드러낼 수 있다고 했다.[2]



내용면에서 보자면 14수 무제시는 거개가 이별의 상사와 실의, 우울, 비애의 감정을 띤다. 그리고 이런 감정의 촉발 원인은 못 이뤄지는 사랑에 있다. 이상은의 무제시는 줄곧 영호도에게 진정(陳情)하여 벼슬을 구하는 일종의 수단이나 문학적 구사[求仕]행위로 읽혀졌다. 청나라 때 풍호와 정몽성은 의산과 여도사 사이의 로맨스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무제시를 일종의 연시로 재해석하려했으며, 민국시기에 蘇雪林는 《玉溪詩謎》에서 의산과 여도사 사이의 일화들을 고증하며 정치적 틀에서 벗어난 연애시 본연의 의미들을 고찰할 수 있게 했지만, 또한 의산의 로맨스라는 일화나 야사의 고증에 치우친 나머지 무제시 본연이 가진 의미는 퇴색되었다.
이후 많은 학자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한 의산의 무제시 해석들이 쏟아져나왔고, 그 중 宋寧娜의 고증을 주목할 만 한데, 송씨의 고증에 따르면 의산이 사랑한 여도사는 초당 시인 송지문의 먼 후손인 송약순이라는 여학사로 많은 전적과 사료로 이를 증명하려 하지만 아직 확실한 증거는 부족한 실정이다.

의산 본인이  《梓州罷吟寄同舍》에서 "楚雨含情皆有托"라고 남녀 사이의 애정에 관한 것은 모두 의탁한 바가 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로써 우리가 의산의 무제시를 읽을 때도 그 속에 보이는 로맨틱한 시구가 그저 염정의 발산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의산 스스로가 숨겨두거나 기탁한 무슨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거나 추측하는 것이다.

. 無題勝有題라, 제목이 없는 것이 제목 있음보다 낫다고 함은 우리가 시를 읽을 때, 제목이 주는 선입견이나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은미하거나 복잡다단한 정념을 몇마디 말로 정의내릴 수 없음을 무제라는 시제는 보여준다.


1. 《無題》(八歲偷照鏡)

八歲偷照鏡,長眉已能畫(1)。
十歲去踏青(2),芙蓉作裙釵(3)。
十二學彈箏(4),銀甲(5)不曾卸。
十四藏六親(6),懸知(7)猶未嫁。
十五泣春風,背面(8)鞦韆下(9)。

【注釋】
(1)《古今注》:魏宮人好畫長眉。
(2) 踏青:春天郊遊。《唐輦下歲時記》:唐人三月上巳日在曲江傾都禊飲踏青。盧公範《饋飾儀》:三月三日上踏青鞋履。
(3) 芙蓉句:荷花,又稱蓮花。《御覽》引《釋名》:裙,下裳也。《離騷》:集芙蓉以為裳。揚雄《反離騷》:被夫容(芙蓉)之朱裳。按:《廣韻》:畫、衩,去聲,十五卦部;卸、嫁、下,去聲。此通用也。錢曰:「衩當改袴。」誤矣。
(4) 彈箏:《梁書·羊侃傳》:有彈箏人陸大喜,著鹿角爪,長七寸。
(5) 銀甲:彈箏時用的骨爪(銀白色的假指甲),套在手指上用來撥箏。卸:除下。《通典》:彈箏用骨爪,長寸餘,以代指。唐人每云銀甲,其作用同鹿角爪。
(6) 藏六親:藏,躲避。六親:指最親密的親屬。古代禮教強調男女有別,女孩子稍稍長大,就須迴避男性,即使是自己的近親。《周禮·地官·大司徒注》曰:六親,父、母、兄、弟、妻、子也。《漢書·禮樂志》:六親和睦。如淳曰:《賈誼書》以為父也、子也、從父昆弟、從祖昆弟、曾祖昆弟、族昆弟也。賈誼《治安策》注同《周禮注》。《史記》:管仲曰:上服度則六親固。《正義》曰:外祖父母一,父母二,姊妹三,妻兄弟之子四,從母之子五,女之子六。解各不同。「父母」、「二」上,當有脫文。
(7) 懸知:料想。猜測而知,忖度之詞。
(8) 背面 : 一作「背立」。背面:背著人面。
(9) 鞦韆下: 鞦韆,又作「秋千」。《古今藝術圖》:寒食秋千,北方山戎之戲,以習輕趫者。《天寶遺事》:宮中至寒食節,築秋千嬉笑為樂,帝常呼為半仙之戲。唐高無際《秋千賦序》:漢武帝祈千秋之壽,故後宮多秋千之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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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劉學鍇,《李商隱詩歌研究》,安徽大學出版社,1998. 32쪽
[2] 张诗群, 《相思树上合欢枝:李商隐的诗歌人生》,重庆出版社集团,第八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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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u



謬 miù〈名〉
(1) (形声。本义:极端错误,非常不合情理)

(2) 同本义 [err;false;wrong]
谬,狂者之妄言也。——《说文》


考之三王而不谬。——《礼记·中庸》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9장에 “군자의 도는 자기 몸에 근본하여 백성들에게 징험하며, 삼왕(三王)에게 상고하여도 틀리지 않으며, 천지에 세워 놓아도 어긋나지 않으며, 귀신에게 질정하여도 의심이 없으며, 백세 뒤에 성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의혹이 되지 않을 것이다.〔君子之道, 本諸身, 徵諸庶民, 考諸三王而不謬, 建諸天地而不悖, 質諸鬼神而無疑, 百世以俟聖人而不惑.〕”

悦之,以谬悠之说。——《庄子》

解心之谬。——《庄子·庚桑楚》
마음을 묶는 속박을 풀다.

故《易》曰:“差以毫厘,谬以千里。”——《汉书·司马迁传》

恩所加,则思无因喜以谬赏;罚所及,则思无以怒而滥刑。——唐· 魏征《谏太宗十思疏》
은혜 더함에는 기뻐할 것이 없는데 잘못 상줌을 생각할 것이고, 벌을 내림에 노할 것 없는데 함부로 벌주는지 생각하소서.

故闻之而不见,虽博必谬。——《荀子·儒效》
고로 듣기만하고 보지 않으면, 비록 박식해도 오류가 반드시 있다.

今言“华”如“华实”之“华”者,盖音谬也。——王安石《游褒禅山记》

(3) 又如:谬戾(荒谬乖僻);谬谈(谬语妄说);谬举(妄举,举用不适当的人才);谬种流传(荒谬错误的文章或议论辗转流传于世)

(4) 姓


謬 miù〈动〉
欺诈;迷误 [deceive;confuse]
谬,欺也。——《广雅》
后世之谬其传而莫能名者,何可胜道也哉!——王安石《游褒神山记》
秦言不听,谬言:…——《燕丹子》

謬-词语
➤谬悠(謬悠)  拼音:miù yōu虚空悠远。引申为荒诞无稽。《庄子·天下》:“ 庄周 闻其风而悦之,以谬悠之説,荒唐之言,无端崖之辞,时恣纵而不儻,不以觭见之也。” 成玄英 疏:“谬,虚也。悠,远也。” 宋 苏轼 《次韵周开祖长官见寄》:“此生岁月行飘忽,晚节功名亦谬悠。” 严复 《救亡决论》:“方其为学也,必无谬悠影响之谈,而后其应事也,始无颠倒支离之患。”

谬见(謬見)  拼音:miù jiàn荒谬的见解。亦谦称自己的见解。 清 吴汝纶 《答严幼陵书》之二:“区区谬见,敢贡所妄测者,以质高明。” 范文澜 蔡美彪 等《中国通史》第三编第二章第四节:“ 唐宪宗 说税额没有增加,是贪得无厌的谬见。” 艾思奇 等《辨证唯物主义历史唯物主义》第九章:“实践所证实的一切都是客观真理,一切谬见归根到底都经不起实践的检验,因此,实践的标准是绝对的。”

谬得(謬得)  拼音:miù de侥幸地得到。 晋 陶潜 《癸卯岁十二月中作与从弟敬远》诗:“高操非所攀,谬得固穷节。” 높은 지조 오를 수 없지만, 가난한 절조야 그런대로 얻었수다. 南朝 梁 江淹 《诣建平王上书》:“日者,谬得升降承明之闕,出入 金华之殿 。” 明 高启 《归吴至枫桥》诗:“官秩加身应谬得,乡音到耳是真归。”

谬种(謬種)  拼音:miù zhǒng
(1).指荒谬错误的言论、学术流派等。 清 恽敬 《上举主笠帆先生书》:“茫茫千古,如驱羊,如履狶,如害马,不力辩焉,则此事皆为谬种矣。” 林纾 《〈慎宜轩文集〉序》:“今庸妄鉅子,飣餖过於 汪伯玉 ,哮勃甚於 祝枝山 ,用险句奇字以震眩俗目,鼓耳贋力,斥 桐城 不值一钱,而无识之谬种,和者嘷声彻天。” 柳亚子 《放歌》:“服从供玩好,谬种流无疆。”
(2).詈词。坏东西;坏蛋。 鲁迅 《彷徨·祝福》:“只有四叔且走而且高声的说:‘不早不迟,偏偏要在这时候,--这就可见是一个谬种。’” 任斌武 《无声的浩歌》:“简直是谬种孽生,大逆不道。”

谬药(謬藥)  拼音:miù yào
指不对症无疗效的药。 宋 文同 《和子平〈悼马〉》:“庸工谬药久不効,倒死櫪下鬃髟髿。”
谬容(謬容)  拼音:miù róng
谓辱蒙容纳。 唐 元稹 《〈献荥阳公诗五十韵〉启》:“启:今月十七日,公会儒于便廡, 稹 亦谬容末席。”
谬会(謬會)  拼音:miù huì
谦称自己的意见、言论正与人相合。 晋 陶潜 《感士不遇赋》:“诚谬会以取拙,且欣然而归止。” 王瑶 注:“谬会谬合。”《资治通鉴·宋文帝元嘉八年》:“ 述 谓其子 综 曰:‘主上矜 卲 夙诚,特加曲恕,吾所言谬会,故特见酬纳耳。’”
谬易(謬易)  拼音:miù yì
变易反覆。《大戴礼记·文王官人》:“言行亟变,从容谬易,好恶无常,行身不类,曰无诚意者也。” 卢辩 注:“从容谬易,安然反覆。”
谬戾(謬戾)  拼音:miù lì
亦作“ 谬盭 ”。 悖谬乖戾。 汉 严遵 《道德指归论·得一》:“是故使天有为,动不顺一,为高得卑,为清得裂,阴阳谬戾,纲弛纪絶。” 明 王世贞 《〈艺苑卮言〉叙》:“其辞旨固不甚谬盭於本,特其漶漫散杂,亡足采者,非以解颐,足鼓掌耳。”一本作“ 谬戾 ”。 鲁迅 《集外集拾遗补编·对于北京女子师范大学风潮宣言》:“可知公论尚在人心,曲直早经显见,偏私谬戾之举,究非空言曲説所能掩饰也。
谬迂(謬迂)  拼音:miù yū
谬误迂阔。 清 孙枝蔚 《午日赠江都明府梁木天》诗:“君欲悉利弊,谁能助訏謨?相念在芳辰,幸可谅谬迂。”

➤谬冀(謬冀)  拼音:miù jì

妄想。 高旭 《甘肃大旱感赋》:“歌舞太平年,粉饰相沿久。匿灾梗不报,谬冀巧不朽。”

➤谬加(謬加)  拼音:miù jiā(1).妄加,错误地施加。《文选·任昉〈奏弹刘整〉》:“终夕不寐,而谬加大杖。” 张铣 注:“言 整 私其子,则竟夕不寐;恶其姪,则妄加大杖。”
(2).用作谦词。 唐 吕颂 《谢赐冬衣表》:“皇慈溥洽,顾品物而均荣;宠渥谬加,在微臣而增惧。” 清 戴名世 《〈齐讴集〉自序》:“而余故不工诗,勉而为之,得一百餘章。方拟弃去,而同游者顾谬加赏叹,力劝余存其稿。”《红楼梦》第七八回:“休谬加奬誉,且看转的如何。”

➤谬辞(謬辭)  拼音:miù cí悦笑取讽的言语。《韩诗外传》卷六:“夫不疏其指而弗知谓之隐;外意外身谓之讳;几廉倚跌谓之移,指缘谬辞谓之苟。” 南朝 梁 刘勰 《文心雕龙·谐隐》:“至 东方曼倩 ,尤巧辞述。但谬辞詆戏,无益规补。” 范文澜 注:“谐辞与隐语,性质相似,惟一则悦笑取讽,一则隐譎示意,苟正以用之,亦可託足於文圃,然若空戏滑稽,则德音大坏矣。”

➤谬略(謬略)  拼音:miù lüè错误粗疏。《宋书·礼志四》:“今礼官所议,谬略未周。”

➤谬爱(謬愛)  拼音:miù ài错爱。称人见爱的谦词。《二刻拍案惊奇》卷三一:“ 王世名 道:‘诸兄皆是谬爱小弟肝鬲之言。’” 清 朱之瑜 《答陈元贇书》:“如何村翁之贤,亦未尝识 荆 ,乃叨谬爱,涓日宠招?”《红楼梦》第一回:“ 雨村 听了,并不推辞,便笑道:‘既蒙谬爱,何敢拂此盛情。’”

➤谬越(謬越)  拼音:miù yuè谓错位,反常地越位。《后汉书·桓帝纪》:“詔曰:‘比者星辰谬越,坤灵震动,灾异之降,必不空发。’”

➤谬牍(謬牘)  拼音:miù dú谓错误地记载。 南朝 梁 江淹 《萧领军让司空并敦劝启》:“国勋必书,史不谬牘。”

➤谬耄(謬耄)  拼音:miù mào谓年老昏惑。《晋书·马隆传》:“时 略阳 太守 冯翊 严舒 与 杨骏 通亲,密图代 隆 ,毁 隆 年老谬耄,不宜服戎,於是徵 隆 ,以 舒 代镇。”

➤谬漏(謬漏)  拼音:miù lòu错误和遗漏。 晋 郭璞 《〈方言〉序》:“余少玩雅训,旁味方言,復为之解,触类广之,演其未及,摘其谬漏。”

➤谬然(謬然)  拼音:miù rán深思的样子。谬,通“ 穆 ”。《孔子家语·辩乐解》:“有间曰: 孔子 有所谬然思焉。” 王肃 注:“谬然,深思貌。”一本作“繆然”。

➤谬工(謬工)  拼音:miù gōng指不懂医理的医生。 明 李时珍 《本草纲目·序例·张子和汗吐下三法》:“人身不过表里,气血不过虚实。良工先治其实,后治其虚。粗工或治实,或治虚。谬工则实实虚虚。”

➤谬理(謬理)  拼音:miù lǐ歪理,错误的道理。 冯金堂 《挖塘》:“这几年虽有时还抬些谬理,已经好得多了,遇事觉得和自己抬家一多,就不再去抬,憋一肚子气回去。”

➤谬举(謬舉)  拼音:miù jǔ(1).妄事举用;妄加举荐。 三国 魏 曹植 《求自试表》:“故君无虚授,臣无虚受。虚授谓之谬举,虚受谓之尸禄,《诗》之‘素餐’所由作也。” 唐 白居易 《为人上宰相书》:“然后明察否臧,精考真伪,得人者行进贤之赏,谬举者坐不当之辜。”
(2).错误的举措。 明 海瑞 《兴革条例·礼属》:“新进生员,旧例本生办酒桌席面奉县官学官,此谬举也。”《明史·黄巩传》:“雪已往之谬举,收既失之人心。”

謬-成语
谬以千里 miù yǐ qiān lǐ
成语解释:指错误荒谬到了极点。

谬种流传 miù zhǒng liú chuán
近义词:以讹传讹反义词:流芳百世成语解释:泛指荒谬的东西一代代地传下去。

谬悠之说 miù yōu zhī shuō
近义词:无稽之谈成语解释:谬悠:荒诞,无稽。荒唐、不合情理的言论

谬想天开 miù xiǎng tiān kāi
近义词:异想天开成语解释:形容想法非常荒谬。

谬妄无稽 miù wàng wú jī
成语解释:指极端错误,毫无根据。

谬采虚誉 miù cǎi xū yù
近义词:谬采虚声成语解释:指错误地相信虚假的名声。同“谬采虚声”。

谬采虚声 miù cǎi xū shēng
近义词:谬采虚誉成语解释:指错误地相信虚假的名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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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의 심학(王陽明之心學)

2011년 절강대학의 동평(董平)교수가 9회 분량으로 강의한 왕양명심학을 보고 간단히 적는다. 영상출처 http://open.163.com/movie/2011/10/6/U/M7GF17HPS_M7J1IBS6U.html



子曰蓋有不知而作之者我無是也로라

一念发动处,便即是行了
의식의 흐름 속에 이미 행동, 의식 속에 행동이 있다.

양지의 자각과 양지의 표출
圣人之道吾性具足

知之真切笃实处即是行 行之明觉精察处即是知

知行合一문제
앎의 최고실현은 이론이 아닌 생활 속에서의 실천의 문제다.
양명의 주장에 따르면, 지와 행의 본체는 본래 합일적 관계로 그의 真知即是行이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 그와 달리 주희는 真知必能行이라는 말로 앎과 실천의 문제를 이해했는데, 진정한 앎은 반드시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 속에는 지와 행의 선후문제가 전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양명에게는 그러한 전제적 조건으로서의 앎은 사라지고, 지와 행이 본래 같은 위상에서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강조할 뿐이다.

格物致知문제
격물치지는 송명이학의 발전과정 속에서 도출됐는데, 이학은 우선 선진유학으로의 회귀라는 타이틀을 걸고 소대례기에서 중용과 대학을 따로 뽑아 논어 맹자와 함께 4서의 체계를 확립한다. 격물치지는 그 중 대학에 있는 개념인데, 개별적 존재에서부터 시작하여 평천하의 천하적 존재를 잇는 한 연결고리다. 문제는 격물이라는 것이 결국 대학이라는 체계에 있어 시작이라는데 있다. 즉 우리가 평천하라는 거시적 문제를 해결할 바탕이 격물, 즉 사물에 대한 바른 이해라는 것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이정이나 주자가 바라본 격물은 결국 물 자체에 내재한 이의 문제에 천착하고 연구함을 역설했다. 그런데, 양명은 물자체 속의 이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궁리의 근거가 사물 자체에 달려있다면, 이후의 성의와 정심의 문제는 이런 개별 사물의 궁리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격은 가 아니라, 이라 해석하면서, 주자적 해석체계를 탈피하며 致知또한 양명에 의해致良知로 재해석된다.

良知문제
양명은 朱宸濠之謀反事件을 평정한 이후에 양지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기본 골자는 龍場悟道시기에 이미 확립됐다고 볼 수 있다. 양지에 대한 설은 이미 맹자에게서 보인다. 孟子的良知배우지 않고 알 수 있는 것이 양지. 또 북송의 張載德性之知天德良知聞見之知經驗性的에 대해 언급한 것도 참조할 만 한다. (마치 서양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 경험론의 대립처럼) 對陽明來說良知就是本心心之本體是我們理性之根據, 양지 자체는 시비지심이다. 동시에 도덕행위의 주체다. 시비선악을 분별하는 근거이자 도덕행위를 하는 주체. 나아가 양지는 인간 존재의 근거를 밝히는 열쇠다. 양지는 완전한 인간 존재의 표징이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확증할 척도다.
인간 존재의 본질과 도덕행위의 본질로서의 양지, 이런 양지는 도덕행위의 실천을 통해, 더 정확히는 일상생활 속의 구체적 영위(營爲)를 통해 증명해야 한다.

致良知문제
치양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우선 현실문제로부터 촉발된다. 양지는 감관으로 인식하는 외물세계 속에서 쉽게 상실된다. 마치 불교에서 육근에 근거한 육식의 작용처럼, 인간의 인식이란 것은 늘 외부로부터의 촉발과 내외적 감관의 식별작용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 감각으로 주어진 감각소여로 생활세계라는 경험적 소여로서의 유의미한 세계를 느끼는 것을 말한다. 즉 칸트 철학에서 보자면 우리는 현상에 늘 매여있다.
현상에 매여있는 우리가 어떻게 참 앎에 도달할까? 양명의 치양지를 간단히 말하자면, 양지를 다시 찾는 것이다. 양지의 회복이란 각도에서 보자면 일찌기 맹자가 "求其放心而已矣"라고 논했으며, 董平교수도 反思, 즉 반성하는 자아를 양지를 회복하는 일종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양명은 결국 말로만 나불대는 인간상을 넘어서 행동하는 인간상을 목표로 했다. 그의 말처럼 "致吾心之良知于事事物物” 내 마음 속의 양지를 사물에까지 이르게 하는 삶을 추구했다. 그리고 이러한 양지의 실현과 확장은 결국 대학이 말하는 명명덕의 또 다른 방편이겠다.
요약하자면, 치양지의 두 가지 기능으로는 첫째, 자기 자아의 명징화(開明,自明,自知), 주체성의 계발이자 자기 건설에 해당하고, 둘째는 주체성의 외재적 발현, 사물에까지 미치는 양지의 세계이해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양지 자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양명은 양지자체의 완전성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겠지만, 우리 모두 그런 보편적 양지를 담지하고 있는지는 간단하지 않다. 간단하고 명백한 도덕문제에서 양지는 제대로 작동하겠지만, 혹은 양지의 회복에 대해 강하게 주장할 수 있겠지만, 가치판단의 문제가 선과 악에 걸쳐있거나 그 가치의 기준이 모호한 경우에 양지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心과 物 문제
양명은 마음 밖에 따로 사물이 없다無心外之物라 했다. 전통적으로 중국학단에서는 더욱이 50년대 이후 맑시즘의 기치 하에 양명의 주관유심주의는 잘못된 사상으로 오인되어왔거나 폄하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중국에는 서양의 유심-유물에 대비될만한 전형적 유물주의는 사실 많지 않다. 그것은 불교사상에서 두드러진 특징일 뿐, 전통적 유가의 가치체계와 학술계통에서는 객관적 사물을 분리시킨 유심주의의 발전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왕양명이 제자들과 회계산에 갔을 때, 떨어지는 꽃을 보며 꽃과 사람의 마음이 서로 상관없을 때는 同歸於寂라고 했는데, 寂에서 사물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꽃을 보고 그것에 대해 구체적 느낌이 발생할 때, 寂에 있던 꽃은 구체적 사물로 드러나게顯 된다. 일종의 인식론적 전환이라고 할까. 體用一源,顯微無間。
仁人은 자기 속의 사단을 확충하는 사람이고, 사물과 자기 마음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할 수 있는 자다. 關心과 不關心의 문제는 결국 사람과 우주 사이에 올바른 관계 회복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사물의 미묘한 관계성에 귀기울이는 사람이다. 관심 없는 사람은 사물의 문제, 나 밖의 문제에 대해 해결할 기미를 놓치게 된다.

➤四句教와 天泉證道
사구의 가르침이란 아래와 같다.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은 심의 본체이고(無善無惡之心體)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은 의의 움직임이고(有善有惡意之動)
선을 알고 악을 아는 것은 양지이며(知善知惡是良知)
선을 행하고 악을 없애는 것은 격물이다(爲善去惡是格物)
이 사구교는 <전습록>과 왕기[王畿] 의 <천천증도기>등에서 보이지만, 정작 양명의 문집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재미있는 점은 왕기는 심체가 무선무악하다 가르침을 일종의 권의지설로 받아들였을 뿐, 확정된 정설로 여기지는 않았다. 전덕홍은 그와 반대로 사구의 가르침을 확정된 교설로 여기고 왕기와 의견을 달리했다. 이후 왕기는 사구교를 사무설로 발전시켰다. 명말 黃宗羲는 전덕홍이 사구교에 얽매여 독자적인 이해가 없는 것을 보고 把攬放舟(배는 보내버리고 밧줄만 붙잡고 있다)고 평했고, 왕기의 사상은 양명의 사상을 고취 발전시켰지만, 점점 그 본래적 의미는 잃었다고 평했다. 
無善無惡라는 사상적 이해는 중국의 유가 전통에서는 드물다. 그러나 양명이 주장한 무선무악은 선의 부재나 가치판단의 중지라는 의미보다는 지선의 한 상태, 정확히는 본심의 상태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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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8일 월요일

無蹤

遺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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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3일 수요일

遠別離


李白

遠別離,古有皇英之二女,乃在洞庭之南,瀟湘之浦。
海水直下萬里深,誰人不言此離苦?
日慘慘兮雲冥冥,猩猩啼煙兮鬼嘯雨。
我縱言之將何補?
皇穹竊恐不照餘之忠誠,雷憑憑兮欲吼怒。
堯舜當之亦禪禹。
君失臣兮龍爲魚,權歸臣兮鼠變虎。
或雲:堯幽囚,舜野死。
九疑聯綿皆相似,重瞳孤墳竟何是?
帝子泣兮綠雲間,隨風波兮去無還。
慟哭兮遠望,見蒼梧之深山。
蒼梧山崩湘水絕,竹上之淚乃可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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