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國)은 제후(諸侯)들을 봉(封)한 지역이요, 풍(風)은 민속(民俗)의 가요(歌謠)의 시(詩)이다. 이것을 풍(風)이라고 이르는 이유는, 윗사람의 교화를 입어서 말이 있고, 그 말이 또 족히 사람을 감동시키니, 마치 물건이 바람의 동(動)함으로 인하여 소리가 있고, 그 소리가 또 족히 물건을 동(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제후(諸侯)가 이것을 채집하여 천자(天子)에게 바치면, 천자(天子)가 받아서 악관(樂官)에게 진열하게 하고, 이에 그 풍속이 숭상하는 것의 좋고 나쁨을 상고하여 그 정치의 득실을 알았던 것이다. 구설(舊說)에 “이남(二南)은 정풍(正風)이 되니, 이것을 규문(閨門)과 향당(鄕黨)과 방국(邦國)에 사용하여 천하를 교화하는 것이요, 십삼국(十三國)은 변풍(變風)이 되니, 이 또한 악관(樂官)에게 소속되어 있어서 때로 익혀 보고 살핌(觀省)에 대비하고 비춰 경계함(監戒)을 드리우는 것이다. 합하여 모두 십오국(十五國)이다.” 하였다.
周南 一之一
周 國名 南 南方諸侯之國也 周國 本在禹貢雍州境內岐山之陽 后稷十三世孫古公亶父 始居其地 傳子王季歷 至孫文王昌 辟國寖廣 於是 徙都于豊 而分岐周故地 以爲周公旦, 召公奭之采邑 且使周公爲政於國中 而召公宣布於諸侯 於是 德化大成於內 而南方諸侯之國 江沱汝漢之間 莫不從化 蓋三分天下 而有其二焉 至子武周公相之 制作禮樂 乃采文王之世 風化所及民俗之詩 被之管弦以爲房中之樂 而又推之 以及於鄕黨邦國 所以著明先王風俗之盛 而使天下後世之修身齊家治國平天下者 皆得以取王發 又遷于鎬 遂克商而有天下 武王崩 子成王誦立 法焉
蓋其得之國中者 雜以南國之詩 而謂之周南 言自天子之國而被於諸侯 不但國中而已也 其得之南國者 則直謂之召南 言自方伯之國 被於南方 而不敢以繫于天子也
岐周 在今鳳翔府岐山縣 豊 在今京兆府鄠縣終南山北 南方之國 卽今興元府京西湖北等路諸州 鎬在豊東二十五里
小序曰 關雎麟趾之化 王者之風 故 繫之周公 南 言化自北而南也 鵲巢騶虞之德 諸侯之風也 先王之所以敎 故 繫之召公 斯言 得之矣
주(周)는 국명(國名)이요, 남(南)은 남방의 제후국이다. 주(周)나라는 본래 〈우공(禹貢)〉의 옹주(雍州) 경내(境內)인 기산(岐山)의 남쪽에 있었으니, 후직(后稷)의 13세손(世孫)인 고공단보(古公亶父)가 비로소 이 땅에 거주하였다. 아들인 왕계(王季) 역(歷)에게 전하고 손자인 문왕(文王) 창(昌)에 이르러 나라를 개척함이 점점 넓어졌다. 이에 도읍을 풍(豊)으로 옮기고는 기주(岐周)의 옛 땅을 나누어 주공(周公) 단(旦)과 소공(召公) 석(奭)의 채읍(采邑)으로 삼았으며, 또 주공(周公)으로 하여금 국중(國中)에서 정사를 다스리게 하고, 소공(召公)은 제후(諸侯)들에게 교화를 펴게 하였다. 이에 덕화(德化)가 크게 안에 이루어져서 남방(南方)의 제후국(諸侯國)과 강(江)·타(沱)·여(汝)·한(漢)의 사이에 있는 나라들이 모두 따라서 교화되지 않음이 없었다. 그리하여 천하를 삼분(三分)함에 삼분(三分)의 이(二)를 소유하였다. 아들인 무왕(武王) 발(發)에 이르러 다시 도읍을 호(鎬)로 옮겼으며, 마침내 상(商)나라를 이기고 천하를 소유하였다. 무왕(武王)이 붕(崩)하고 아들인 성왕 송(成王誦)이 즉위하자,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보필하여 예악(禮樂)을 제정하였는데, 마침내 문왕(文王)의 세대에 풍화(風化)가 미친 바의 민속(民俗)의 시(詩)를 채집하여, 이것을 관현(管弦)의 악기(樂器)에 올려서 방중(房中)의 음악으로 삼았고, 또 미루어 향당(鄕黨)과 방국(邦國)에까지 미쳤으니, 이는 선왕(先王)의 풍속(風俗)의 훌륭함을 드러내어 밝혀서 천하(天下) 후세(後世)에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 하는 자로 하여금 모두 법을 취함이 있게 하려 해서였다.
국중(國中)에서 얻은 것은 남국(南國)의 시(詩)를 섞어 ‘주남(周南)’이라 일렀으니, 천자(天子)의 나라로부터 제후국(諸侯國)에 입혀졌고, 단지 국중(國中) 뿐만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남국(南國)에서 얻은 것은 다만 ‘소남(召南)’이라고 일렀으니, 방백(方伯)의 나라로부터 남방(南方)에 입혀져서 감히 천자국(天子國)에 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주(岐周)는 지금의 봉상부(鳳翔府) 기산현(岐山縣)에 있었고, 풍(豊)은 지금의 경조부(京兆府) 현(縣) 종남산(終南山) 북쪽에 있었다. 남방(南方)의 나라는 바로 지금의 흥원부(興元府)와 경서(京西)·호북(湖北) 등로(等路)의 여러 주(州)이고, 호(鎬)는 풍(豊)의 동쪽 25이(里) 지점에 있었다.
소서(小序)[모씨서(毛氏序)]에 이르기를, “〈관저(關雎)〉과 〈인지(麟趾)〉의 교화는 왕자(王者)의 풍(風)이므로 이것을 주공(周公)에 달았으며, 남(南)은 교화가 북(北)에서 남(南)으로 갔음을 말한 것이다. 〈작소(鵲巢)〉과 〈추우(騶虞)〉의 덕(德)은 제후(諸侯)의 풍(風)이니, 선왕(先王)이 가르친 것이므로 이것을 소공(召公)에 달았다.” 하였으니, 이 말이 맞다.
關雎
關關雎鳩 在河之洲 꽌꽌하고 우는 저구(雎鳩)새 하수(河水)의 모래섬에 있네
窈窕淑女 君子好逑 요조(窈窕) 숙녀(淑女)는 군자(君子)의 좋은 짝이로세
傳
興也 關關 雌雄相應之和聲也 雎鳩 水鳥 一名王雎 狀類鳧鷖 今江淮間有之 生有定偶而不相亂 偶常竝遊而不相狎xiāng xiá 故 毛傳 以爲摯而有別 列女傳 以爲人未嘗見其乘居而匹處者 蓋其性然也 河 北方流水之通名 洲 水中可居之地也 窈窕 幽閒之意 淑 善也 女者 未嫁之稱 蓋指文王之妃大姒 爲處子時而言也 君子 則指文王也 好 亦善也 述 匹也 毛傳之摯字 與至通 言其情意深至也
흥(興)이다. 관관(關關)은 자웅(雌雄)이 서로 응하는 화(和)한 소리이다. 저구(雎鳩)는 물새이니, 일명은 왕저(王雎)이다. 모양이 부예와 유사하니, 지금 강(江)과 회수(淮水) 사이에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짝이 있어서 서로 난잡하게 하지 않고, 짝이 항상 같이 놀되 서로 친압(親狎)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전(毛傳)》에 이르기를 “정이 두터우면서도 분별이 있다.” 하였고, 《열녀전(列女傳)》에는 “사람들이 일찍이 네 마리가 같이 살고 혼자서 처하는 것을 본 자가 없다.” 하였으니, 그 천성(天性)이 그러한 것이다. 하(河)는 북방(北方)으로 흐르는 물의 통칭이다. 주(洲)는 물 속의 거(居)할 만한 땅이다. 요조(窈窕)는 그윽하고 고요한 뜻이다. 숙(淑)은 선(善)[좋음]이요, 여(女)는 시집가지 않은 여자의 칭호이니, 문왕(文王)의 비(妃)인 태사가 처녀(處女)로 있을 때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군자(君子)는 문왕(文王)을 가리킨다. 호(好) 또한 좋음이다. 구(逑)는 짝이다. 《모전(毛傳)》의 지(摯)는 지(至)와 통하니 그 정의(情意)가 깊고 지극함을 말한 것이다.
○ 興者 先言他物 以引起所詠之詞也 周之文王 生有聖德 又得聖女姒氏 以爲之配 宮中之人 於其始至 見其有幽閒貞靜之德 故 作是詩 言彼關關然之雎鳩 則相與和鳴於河洲之上矣 此窈窕之淑女則豈非君子之善匹乎 言其相與和樂而恭敬 亦若雎鳩之情摯而有別也 後凡言興者 其文意皆放此云
漢匡衡曰 窈窕淑女, 君子好逑 言能致其貞淑 不貳其操 情欲之感 無介乎容儀 宴私之意 不形乎動靜 夫然後 可以配至尊而爲宗廟主 此綱紀之首 王敎之端也 可謂善說詩矣
○ 흥(興)은 먼저 다른 사물을 말하여 읊을 말을 일으키는 것이다. 주(周)나라 문왕(文王)은 태어나면서부터 성덕(聖德)이 있었고, 또 성녀(聖女)인 사씨를 얻어 배필로 삼았으니, 궁중(宮中)에 있는 사람들이 태사가 처음 시집올 때에 그 유한(幽閒) 정정(貞靜)한 덕(德)이 있음을 보았으므로 이 시(詩)를 지어서, “저 관관연(關關然)히 우는 저구(雎鳩)새가 서로 더불어 하주(河洲)의 위에서 화(和)하게 울고 있으니, 이 요조(窈窕)한 숙녀(淑女)가 어찌 군자(君子)의 좋은 짝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부부(夫婦)간에> 서로 더불어 화락(和樂)하면서도 공경함이 또한 저구(雎鳩)새가 정이 두터우면서도 분별이 있음과 같음을 말한 것이니, 뒤에 무릇 흥(興)이라고 말한 것은 그 글뜻이 모두 이와 같다.
한(漢)나라 광형(匡衡)이 말하기를,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호구(君子好逑)’라는 것은 능히 그 정숙함을 지극히 하여 그 지조(志操)를 변치 않아서, 정욕(情欲)의 느낌이 용의(容儀)에 개입함이 없고, 연사(宴私)의 뜻이 동정(動靜)에 나타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한 뒤에야 지존(至尊)[군주(君主)]에 짝하여 종묘(宗廟)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기강(紀綱)의 머리요, 왕교(王敎)의 단서이다.” 하였으니, 시(詩)를 잘 설명했다고 이를 만하도다.
傳
興也 參差 長短不齊之貌 荇 接余也 根生水底 莖如釵股 上靑下白 葉紫赤 圓徑寸餘 浮在水面 或左或右 言無方也 流 順水之流而取之也 或寤或寐 言無時也 服 猶懷也 悠 長也 輾者 轉之半 轉者 輾之周 反者 輾之過 側者 轉之留 皆臥不安席之意
○ 此章 本其未得而言 彼參差之荇菜 則當左右無方以流之矣 此窈窕之淑女 則當寤寐不忘以求之矣 蓋此人此德 世不常有 求之不得 則無以配君子而成其內治之美 故 其憂思之深 不能自已 至於如此也
參差荇菜 左右采之 들쭉날쭉한 마름나물을 좌우(左右)로 취하여 가리도다
窈窕淑女 琴瑟友之 요조(窈窕) 숙녀(淑女)를 거문고와 비파로 친히 하도다
參差荇菜 左右芼之 둘쭉날쭉한 마름나물을 좌우(左右)로 삶아 올리도다
窈窕淑女 鍾鼓樂之 요조(窈窕) 숙녀(淑女)를 종과 북으로 즐겁게 하도다
傳
興也 采 取而擇之也 芼 熟而薦之也 琴 五弦 或七弦 瑟 二十五弦 皆絲屬 樂之小者也 友者 親愛之意也 鍾 金屬 鼓 革屬 樂之大者也 樂則和平之極也
흥(興)이다. 채(采)는 취하여 가림이요, 모(芼)는 삶아서 올리는 것이다. 금(琴)은 다섯 줄, 또는 일곱 줄이며, 슬(瑟)은 25줄이니, 모두 현악기의 등속으로 악기 중에 작은 것이다. 우(友)는 친애하는 뜻이다. 종(鍾)은 쇠로 만든 악기의 등속이요, 고(鼓)는 가죽으로 만든 악기의 등속이니, 악기 중에 큰 것이다. 악(樂)은 화평함이 지극한 것이다.
○ 此章 据今始得而言 彼參差之荇菜 旣得之 則當采擇而亨(제사)올리다芼之矣 此窈窕之淑女 旣得之 則當親愛而娛樂之矣 蓋此人此德 世不常有 幸而得之 則有以配君子而成內治 故 其喜樂尊奉之意 不能自已又如此云
○ 이 장(章)은 지금에 처음 배필을 얻었을 때를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저 참치(參差)의 행채(荇菜)를 이미 얻었으면 마땅히 가려서 삶아 올려야 할 것이요, 이 요조숙녀(窈窕淑女)를 이미 얻었으면 마땅히 친애하고 즐거워해야 할 것이다. 이 사람과 이 덕은 세상에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니, 다행히 얻으면 군자(君子)를 짝하여 내치(內治)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그 기쁘고 즐거우며 높이고 받드는 뜻이 스스로 그치지 못함이 또 이와 같은 것이다.
關雎三章 一章 四句 二章 章八句
[毛序]孔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愚謂 此言 爲此詩者 得其性情之正, 聲氣之和也 蓋德如雎鳩 摯而有別 則后妃性情之正 固可以見其一端矣 至於寤寐反側, 琴瑟鍾鼓 極其哀樂而皆不過其則焉 則詩人性情之正 又可以見其全體也 獨其聲氣之和 有不可得而聞者 雖若可恨 然學者姑卽其詞而玩其理以養心焉 則亦可以得學詩之本矣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저(關雎)〉은 즐겁되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상(傷)하지 않았다.” 하셨으니, 내 생각하건대, 이 말씀은 이 시(詩)를 지은 자가 성정(性情)의 올바름과 성기(聲氣)의 화(和)함을 얻었음을 말씀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덕(德)이 저구(雎鳩)새와 같아 정이 돈독하면서도 분별이 있다면 후비(后妃)의 성정(性情)의 올바름을 진실로 그 일단(一端)을 볼 수 있고, 오매반측(寤寐反側)하고 금슬종고(琴瑟鍾鼓)로 즐거워하여 그 슬픔과 즐거움을 지극히 하되 모두 그 법도에 지나치지 않게 한 것으로 말하면 시인(詩人)의 성정(性情)의 올바름을 또 그 전체를 볼 수 있다. 다만 그 성기(聲氣)의 화(和)함[곡조(曲調)]을 얻어 들을 수 없는 점이 비록 한스러울 듯하나, 배우는 자가 우선 그 말[가사(歌辭)]에 나아가 그 이치를 관찰하여 마음을 기른다면 또한 시(詩)를 배우는 근본을 얻게 될 것이다.
○ 匡衡曰 妃匹之際 生民之始 萬福之原 婚姻之禮正然後 品物遂而天命全 孔子論詩 以關雎爲始言 太上者 民之父母 后夫人之行 不侔乎天地 則無以奉神靈之統 而理萬物之宜 自上世以來 三代興廢 未有不由此者也
○ 광형(匡衡)이 말하였다. “배필의 즈음은 생민(生民)의 시초요, 만복(萬福)의 근원이니, 혼인(婚姻)의 예(禮)가 바루어진 뒤에야 품물(品物)[만물(萬物)]이 이루어져 천명(天命)이 온전해진다. 공자(孔子)께서 시(詩)를 논할 적에 〈관저(關雎)〉을 시초로 삼으셨으니, 태상(太上)[군주(君主)]은 백성의 부모(父母)이므로, 후부인(后夫人)의 행실이 천지(天地)에 비견할 만하지 못하면 신령(神靈)의 전통을 받들어 만물(萬物)의 마땅함을 다스릴 수가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상고시대(上古時代) 이래로 삼대(三代)의 흥(興)하고 폐(廢)함이 이에 말미암지 않은 적이 없었다.”
周南 一之一
周 國名 南 南方諸侯之國也 周國 本在禹貢雍州境內岐山之陽 后稷十三世孫古公亶父 始居其地 傳子王季歷 至孫文王昌 辟國寖廣 於是 徙都于豊 而分岐周故地 以爲周公旦, 召公奭之采邑 且使周公爲政於國中 而召公宣布於諸侯 於是 德化大成於內 而南方諸侯之國 江沱汝漢之間 莫不從化 蓋三分天下 而有其二焉 至子武周公相之 制作禮樂 乃采文王之世 風化所及民俗之詩 被之管弦以爲房中之樂 而又推之 以及於鄕黨邦國 所以著明先王風俗之盛 而使天下後世之修身齊家治國平天下者 皆得以取王發 又遷于鎬 遂克商而有天下 武王崩 子成王誦立 法焉
蓋其得之國中者 雜以南國之詩 而謂之周南 言自天子之國而被於諸侯 不但國中而已也 其得之南國者 則直謂之召南 言自方伯之國 被於南方 而不敢以繫于天子也
岐周 在今鳳翔府岐山縣 豊 在今京兆府鄠縣終南山北 南方之國 卽今興元府京西湖北等路諸州 鎬在豊東二十五里
小序曰 關雎麟趾之化 王者之風 故 繫之周公 南 言化自北而南也 鵲巢騶虞之德 諸侯之風也 先王之所以敎 故 繫之召公 斯言 得之矣
국중(國中)에서 얻은 것은 남국(南國)의 시(詩)를 섞어 ‘주남(周南)’이라 일렀으니, 천자(天子)의 나라로부터 제후국(諸侯國)에 입혀졌고, 단지 국중(國中) 뿐만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남국(南國)에서 얻은 것은 다만 ‘소남(召南)’이라고 일렀으니, 방백(方伯)의 나라로부터 남방(南方)에 입혀져서 감히 천자국(天子國)에 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주(岐周)는 지금의 봉상부(鳳翔府) 기산현(岐山縣)에 있었고, 풍(豊)은 지금의 경조부(京兆府) 현(縣) 종남산(終南山) 북쪽에 있었다. 남방(南方)의 나라는 바로 지금의 흥원부(興元府)와 경서(京西)·호북(湖北) 등로(等路)의 여러 주(州)이고, 호(鎬)는 풍(豊)의 동쪽 25이(里) 지점에 있었다.
소서(小序)[모씨서(毛氏序)]에 이르기를, “〈관저(關雎)〉과 〈인지(麟趾)〉의 교화는 왕자(王者)의 풍(風)이므로 이것을 주공(周公)에 달았으며, 남(南)은 교화가 북(北)에서 남(南)으로 갔음을 말한 것이다. 〈작소(鵲巢)〉과 〈추우(騶虞)〉의 덕(德)은 제후(諸侯)의 풍(風)이니, 선왕(先王)이 가르친 것이므로 이것을 소공(召公)에 달았다.” 하였으니, 이 말이 맞다.
關雎
關關雎鳩 在河之洲 꽌꽌하고 우는 저구(雎鳩)새 하수(河水)의 모래섬에 있네
窈窕淑女 君子好逑 요조(窈窕) 숙녀(淑女)는 군자(君子)의 좋은 짝이로세
傳
興也 關關 雌雄相應之和聲也 雎鳩 水鳥 一名王雎 狀類鳧鷖 今江淮間有之 生有定偶而不相亂 偶常竝遊而不相狎xiāng xiá 故 毛傳 以爲摯而有別 列女傳 以爲人未嘗見其乘居而匹處者 蓋其性然也 河 北方流水之通名 洲 水中可居之地也 窈窕 幽閒之意 淑 善也 女者 未嫁之稱 蓋指文王之妃大姒 爲處子時而言也 君子 則指文王也 好 亦善也 述 匹也 毛傳之摯字 與至通 言其情意深至也
흥(興)이다. 관관(關關)은 자웅(雌雄)이 서로 응하는 화(和)한 소리이다. 저구(雎鳩)는 물새이니, 일명은 왕저(王雎)이다. 모양이 부예와 유사하니, 지금 강(江)과 회수(淮水) 사이에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짝이 있어서 서로 난잡하게 하지 않고, 짝이 항상 같이 놀되 서로 친압(親狎)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전(毛傳)》에 이르기를 “정이 두터우면서도 분별이 있다.” 하였고, 《열녀전(列女傳)》에는 “사람들이 일찍이 네 마리가 같이 살고 혼자서 처하는 것을 본 자가 없다.” 하였으니, 그 천성(天性)이 그러한 것이다. 하(河)는 북방(北方)으로 흐르는 물의 통칭이다. 주(洲)는 물 속의 거(居)할 만한 땅이다. 요조(窈窕)는 그윽하고 고요한 뜻이다. 숙(淑)은 선(善)[좋음]이요, 여(女)는 시집가지 않은 여자의 칭호이니, 문왕(文王)의 비(妃)인 태사가 처녀(處女)로 있을 때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군자(君子)는 문왕(文王)을 가리킨다. 호(好) 또한 좋음이다. 구(逑)는 짝이다. 《모전(毛傳)》의 지(摯)는 지(至)와 통하니 그 정의(情意)가 깊고 지극함을 말한 것이다.
漢匡衡曰 窈窕淑女, 君子好逑 言能致其貞淑 不貳其操 情欲之感 無介乎容儀 宴私之意 不形乎動靜 夫然後 可以配至尊而爲宗廟主 此綱紀之首 王敎之端也 可謂善說詩矣
○ 흥(興)은 먼저 다른 사물을 말하여 읊을 말을 일으키는 것이다. 주(周)나라 문왕(文王)은 태어나면서부터 성덕(聖德)이 있었고, 또 성녀(聖女)인 사씨를 얻어 배필로 삼았으니, 궁중(宮中)에 있는 사람들이 태사가 처음 시집올 때에 그 유한(幽閒) 정정(貞靜)한 덕(德)이 있음을 보았으므로 이 시(詩)를 지어서, “저 관관연(關關然)히 우는 저구(雎鳩)새가 서로 더불어 하주(河洲)의 위에서 화(和)하게 울고 있으니, 이 요조(窈窕)한 숙녀(淑女)가 어찌 군자(君子)의 좋은 짝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부부(夫婦)간에> 서로 더불어 화락(和樂)하면서도 공경함이 또한 저구(雎鳩)새가 정이 두터우면서도 분별이 있음과 같음을 말한 것이니, 뒤에 무릇 흥(興)이라고 말한 것은 그 글뜻이 모두 이와 같다.
한(漢)나라 광형(匡衡)이 말하기를,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호구(君子好逑)’라는 것은 능히 그 정숙함을 지극히 하여 그 지조(志操)를 변치 않아서, 정욕(情欲)의 느낌이 용의(容儀)에 개입함이 없고, 연사(宴私)의 뜻이 동정(動靜)에 나타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한 뒤에야 지존(至尊)[군주(君主)]에 짝하여 종묘(宗廟)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기강(紀綱)의 머리요, 왕교(王敎)의 단서이다.” 하였으니, 시(詩)를 잘 설명했다고 이를 만하도다.
參差cēncī荇菜 左右流之 들쭉날쭉한 마름나물을 좌우(左右)로 물길따라 취하도다
窈窕淑女 寤寐求之 요조(窈窕) 숙녀(淑女)를 자나깨나 구하도다
求之不得 寤寐思服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지라 자나깨나 생각하고 그리워하여
悠哉悠哉 輾轉反側 아득하고 아득해라 전전(輾轉)하며 반측(反側)하노라
傳
興也 參差 長短不齊之貌 荇 接余也 根生水底 莖如釵股 上靑下白 葉紫赤 圓徑寸餘 浮在水面 或左或右 言無方也 流 順水之流而取之也 或寤或寐 言無時也 服 猶懷也 悠 長也 輾者 轉之半 轉者 輾之周 反者 輾之過 側者 轉之留 皆臥不安席之意
○ 此章 本其未得而言 彼參差之荇菜 則當左右無方以流之矣 此窈窕之淑女 則當寤寐不忘以求之矣 蓋此人此德 世不常有 求之不得 則無以配君子而成其內治之美 故 其憂思之深 不能自已 至於如此也
窈窕淑女 琴瑟友之 요조(窈窕) 숙녀(淑女)를 거문고와 비파로 친히 하도다
參差荇菜 左右芼之 둘쭉날쭉한 마름나물을 좌우(左右)로 삶아 올리도다
窈窕淑女 鍾鼓樂之 요조(窈窕) 숙녀(淑女)를 종과 북으로 즐겁게 하도다
傳
興也 采 取而擇之也 芼 熟而薦之也 琴 五弦 或七弦 瑟 二十五弦 皆絲屬 樂之小者也 友者 親愛之意也 鍾 金屬 鼓 革屬 樂之大者也 樂則和平之極也
흥(興)이다. 채(采)는 취하여 가림이요, 모(芼)는 삶아서 올리는 것이다. 금(琴)은 다섯 줄, 또는 일곱 줄이며, 슬(瑟)은 25줄이니, 모두 현악기의 등속으로 악기 중에 작은 것이다. 우(友)는 친애하는 뜻이다. 종(鍾)은 쇠로 만든 악기의 등속이요, 고(鼓)는 가죽으로 만든 악기의 등속이니, 악기 중에 큰 것이다. 악(樂)은 화평함이 지극한 것이다.
○ 此章 据今始得而言 彼參差之荇菜 旣得之 則當采擇而亨(제사)올리다芼之矣 此窈窕之淑女 旣得之 則當親愛而娛樂之矣 蓋此人此德 世不常有 幸而得之 則有以配君子而成內治 故 其喜樂尊奉之意 不能自已又如此云
○ 이 장(章)은 지금에 처음 배필을 얻었을 때를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저 참치(參差)의 행채(荇菜)를 이미 얻었으면 마땅히 가려서 삶아 올려야 할 것이요, 이 요조숙녀(窈窕淑女)를 이미 얻었으면 마땅히 친애하고 즐거워해야 할 것이다. 이 사람과 이 덕은 세상에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니, 다행히 얻으면 군자(君子)를 짝하여 내치(內治)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그 기쁘고 즐거우며 높이고 받드는 뜻이 스스로 그치지 못함이 또 이와 같은 것이다.
關雎三章 一章 四句 二章 章八句
[毛序]孔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愚謂 此言 爲此詩者 得其性情之正, 聲氣之和也 蓋德如雎鳩 摯而有別 則后妃性情之正 固可以見其一端矣 至於寤寐反側, 琴瑟鍾鼓 極其哀樂而皆不過其則焉 則詩人性情之正 又可以見其全體也 獨其聲氣之和 有不可得而聞者 雖若可恨 然學者姑卽其詞而玩其理以養心焉 則亦可以得學詩之本矣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저(關雎)〉은 즐겁되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상(傷)하지 않았다.” 하셨으니, 내 생각하건대, 이 말씀은 이 시(詩)를 지은 자가 성정(性情)의 올바름과 성기(聲氣)의 화(和)함을 얻었음을 말씀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덕(德)이 저구(雎鳩)새와 같아 정이 돈독하면서도 분별이 있다면 후비(后妃)의 성정(性情)의 올바름을 진실로 그 일단(一端)을 볼 수 있고, 오매반측(寤寐反側)하고 금슬종고(琴瑟鍾鼓)로 즐거워하여 그 슬픔과 즐거움을 지극히 하되 모두 그 법도에 지나치지 않게 한 것으로 말하면 시인(詩人)의 성정(性情)의 올바름을 또 그 전체를 볼 수 있다. 다만 그 성기(聲氣)의 화(和)함[곡조(曲調)]을 얻어 들을 수 없는 점이 비록 한스러울 듯하나, 배우는 자가 우선 그 말[가사(歌辭)]에 나아가 그 이치를 관찰하여 마음을 기른다면 또한 시(詩)를 배우는 근본을 얻게 될 것이다.
○ 匡衡曰 妃匹之際 生民之始 萬福之原 婚姻之禮正然後 品物遂而天命全 孔子論詩 以關雎爲始言 太上者 民之父母 后夫人之行 不侔乎天地 則無以奉神靈之統 而理萬物之宜 自上世以來 三代興廢 未有不由此者也
○ 광형(匡衡)이 말하였다. “배필의 즈음은 생민(生民)의 시초요, 만복(萬福)의 근원이니, 혼인(婚姻)의 예(禮)가 바루어진 뒤에야 품물(品物)[만물(萬物)]이 이루어져 천명(天命)이 온전해진다. 공자(孔子)께서 시(詩)를 논할 적에 〈관저(關雎)〉을 시초로 삼으셨으니, 태상(太上)[군주(君主)]은 백성의 부모(父母)이므로, 후부인(后夫人)의 행실이 천지(天地)에 비견할 만하지 못하면 신령(神靈)의 전통을 받들어 만물(萬物)의 마땅함을 다스릴 수가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상고시대(上古時代) 이래로 삼대(三代)의 흥(興)하고 폐(廢)함이 이에 말미암지 않은 적이 없었다.”
○광형 [匡衡]
전한 동해(東海) 승(承) 사람. 자는 치규(稚圭)다. 집안은 가난했지만 공부하기를 좋아했고, 고용살이를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후창(後蒼)을 좇아 『제시(齊詩)』를 배웠고, 문학에 능했으며 『시(詩)』에 정통했다. 선재(宣帝) 때 사책갑과(射策甲科)에 합격하여 태상장고(太常掌故)에 제수되고, 평원문학(平原文學)에 올랐다. 원제(元帝) 초에 낭중(郎中)이 되었고, 박사(博士)와 급사중(給事中)으로 옮겼다. 글을 올려 시정(時政)을 논했는데, 경의(經義)와 잘 상부했다.
광록훈(光祿勳)과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역임했다. 원제 건소(建昭) 3년(기원전 36) 승상(丞相)이 되어 낙안후(樂安侯)에 봉해졌다. 성제(成帝)가 즉위하자 왕존(王尊)에게 탄핵을 당했다. 성제 건시(建始) 3년(기원전 30) 봉국(封國)의 전조(田租)를 과다하게 거둔 죄로 면직되어 서인(庶人)이 되었다. 육경(六經) 외에도 『논어』와 『효경』을 숭상했다. 특히 『시경』을 잘 해설했다. 사단(師丹)과 복리(伏理), 만창(滿昌) 등에게 학문을 전수하여 광씨제시학(匡氏齊詩學)을 개창했다.[네이버 지식백과] 광형 [匡衡]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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