維葉萋萋,黃鳥于飛,무성해라 저 잎으로, 꾀고리가 날아드네.
集於灌木,其鳴喈喈[jiējiē]。나지막한 나무에 모여, 울기를 꾀꼴꾀꼴.
賦也 葛 草名 蔓生 可爲絺綌chī xì者 覃 延 施 移也 中谷 谷中也 萋萋 盛貌 黃鳥 鸝也 灌木 叢木也 喈喈和聲之遠聞也
부(賦)이다. 갈(葛)은 풀 이름이니, 만생(蔓生)하고 치격(絺綌)[갈포(葛布)]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담(覃)은 뻗어남이요, 이(施)는 옮겨감이다. 중곡(中谷)은 골짜기 가운데이다. 처처(萋萋)는 성(盛)한 모양이다. 황조(黃鳥)는 꾀꼬리이다. 관목(灌木)은 총목(叢木)이다. 개개(喈喈)는 화(和)한 소리가 멀리 들리는 것이다.
○ 부(賦)는 그 일을 그대로 펴서 곧바로 말하는 것이다. 후비(后妃)가 이미 치격()을 이루고 그 일을 읖어, 초하(初夏)의 때에 칡잎이 막 성하였는데 황조(黃鳥)가 그 위에서 울었음을 추서(追敍)한 것이다. 뒤에 모두 부(賦)라고 말한 것은 이와 같다.
葛之覃兮,施于中谷,칡넝쿨이 뻗어가네, 골짜기 가운데까지 뻗어가네.
維葉莫莫。是刈是濩,무성해라 저 잎으로, 베거니 삶거니.
為絺為綌,服之無斁。치를 만들고 격을 만들어 입어 싫음이 없어라.
賦也 莫莫 茂密貌 刈 斬 濩 煮也 精曰絺 麤曰綌 斁 厭也
부(賦)이다. 막막(莫莫)은 무성하고 빽빽한 모양이다. 예(刈)는 벰이요, 호(濩)는 삶는 것이다. 정(精)한 것을 치라 하고, 거친 것을 격이라 한다. 두(역)(斁)는 싫어함이다.
○ 此 言盛夏之時 葛旣成矣 於是 治以爲布 而服之無厭 蓋親執其勞 而知其成之不易 所以心誠愛之 雖極垢弊 而不忍厭棄也
○ 이는 성하(盛夏)의 때에 칡이 이미 다 자랐다. 이에 이것을 다루어 갈포(葛布)를 만들어서 입음에 싫증냄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친히 수고로운 일을 하여 그 이루어짐이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마음에 진실로 사랑하여 비록 지극히 때가 끼고 해졌으나 차마 싫어하여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言告師氏,言告言歸。사씨에게 여쭈어, 친정으로 간다고 말했네.
薄汙我私,薄浣我衣。잠깐이면 내 연복을 빨며, 또 내 예복을 빤다네.
害浣害否?歸寧父母。뭐는 빨고 뭐는 안빨까, 돌아가 부모님 문안하리.
賦也 言 辭也 師 女師也 薄 猶少也 汚 煩撋之 以去其汚 猶治亂而曰亂也 澣 則濯之而已 私 燕服也衣 禮服也 害 何也 寧 安也 謂問安也
薄汙我私,薄浣我衣。잠깐이면 내 연복을 빨며, 또 내 예복을 빤다네.
害浣害否?歸寧父母。뭐는 빨고 뭐는 안빨까, 돌아가 부모님 문안하리.
賦也 言 辭也 師 女師也 薄 猶少也 汚 煩撋之 以去其汚 猶治亂而曰亂也 澣 則濯之而已 私 燕服也衣 禮服也 害 何也 寧 安也 謂問安也
부(賦)이다. 언(言)은 어조사이다. 사(師)는 여스승이다. 박(薄)은 소(少)[잠깐]와 같다. 오(汚)는 번거롭게 문대어서 더러운 때를 제거하는 것이니, 난(亂)을 다스림을 난(亂)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澣)은 그대로 빠는 것이다. 사(私)는 연복(燕服)이요, 의(衣)는 예복(禮服)이다. 할(害)은 어찌이고 영(寧)은 편안함이니, 문안함을 이른다.
○ 上章 旣成絺綌之服矣 此章 遂告其師氏 使告于君子以將歸寧之意 且曰 盍治其私服之汚而澣其禮服之衣乎 何者當澣而何者可以未澣乎 我將服之 以歸寧於父母矣
○ 상장(上章)에서는 이미 치격의 옷을 이루었고, 이 장(章)에서는 마침내 사씨(師氏)에게 여쭈어 군자(君子)[남편(男便)]에게 장차 친정에 돌아가 문안할 뜻을 말하게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어찌 사복(私服)이 더러운 것을 다스리고 예복(禮服)의 옷은 빨지 않겠는가. 어느 것은 빨고 어느 것은 빨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장차 이 옷을 입고 돌아가 부모(父母)에게 문안하겠다.”고 한 것이다.
葛覃三章 章六句
此詩 后妃所自作 故 無贊美之詞 然 於此 可以見其已貴而能勤 已富而能儉 已長而敬不弛於師傅已嫁而孝不衰於父母 是皆德之厚而人所難也 小序 以爲后妃之本 庶幾近之
[毛序] 葛覃 后妃之本也 后妃在父母家 則志在於女功之事 躬儉節用 服澣濯之衣 尊敬師傅 則可以歸安父母 化天下以婦道也
이 시(詩)는 후비(后妃)가 스스로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찬미(贊美)한 말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미 귀해졌는데도 능히 부지런하고, 이미 부(富)한데도 능히 검소하며, 이미 장성하였는데도 공경이 사부(師傅)에게 해이하지 않고, 이미 시집갔는데도 효성이 부모(父母)에게 쇠하지 않음을 볼 수 있으니, 이는 모두 덕(德)이 후한 것이어서 사람이 하기 어려운 바이다. 소서(小序)에 ‘후비(后妃)의 근본(根本)’이라 하였으니, 거의 이에 가까울 것이다.
[모서]갈담은 후비의 근본이다. 후비가 부모의 집에 있은 즉 아녀자들의 일에 뜻을 뚜며, 몸소 검소하고 절용하며 옷을 손수 빨며, 사부를 존경한 즉, 가히 돌아가 부모님을 편히 할 수 있으며, 천하를 부도로 교화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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