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3Now when Joshua was near Jericho, he looked up and saw a man standing in front of him with a drawn sword in his hand. Joshua went up to him and asked, 'Are you for us or for our enemies?'
14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4'Neither,' he replied, 'but as commander of the army of the LORD I have now come.' Then Joshua fell facedown to the ground in reverence, and asked him, 'What message does my Lord have for his servant?'
15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15The commander of the LORD's army replied, "Take off your sandals, for the place where you are standing is holy." And Joshua did so.
사명을 받들고 가는 길에 그 사명을 주는 자가 오히려 방해자로 등장하거나 또는 사명을 받은 자와 대결하는 장면들은 성경에 자주 보인다. 일종의 전형(archetype)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데, 본문의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모세가 겪었던 일전의 전형적 사건들을 축약적으로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거룩한 땅에서 신을 벗으라는 명령이 모세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이고, 칼을 든자, 마치 대적하려는 자와 같은 모습의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모세가 애굽으로 향하다가 만난 하나님의 사자와 유사하다. 모세를 피남편이라고 칭하게 했던 그 사건은 본문 앞절에 보이는 이스라엘 2세대들의 여리고 평지 할례의식과 일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다.
발람이 발락의 요청에 응해 가는 길에 만난 하나님의 사자나,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만난 사자는 모두 정해진 여정에서 생기는 걸림이고 여정을 지체하게 하는 사건들을 발생시킨다. 문제는 그들이 왜 도정에서 방해자obstructor들을 만나는가이다. 그들은 분명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길을 떠나다가 봉변이나 기이한 일들을 당한다. 성경은 분명히 할례라는 행위를 매개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다시 정립시킨다.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지 않음으로 모세가 죽을 위기에 처했으며, 야곱이 환도뼈를 얻어맞고 불구가 되는 일,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 2세대들은 할례를 받았는데 정작 여호수아는 새로 행해지는 할례에서 제외되는(이미 받았기에) 일과 홀로 여리고를 바라보는 일에는 할례, 즉 하나님 앞에 나라는 인간의 죽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남성성의 거세, 나를 내세울 것 없는 상태, 온전히 하나님만이 나의 주(아도나이)되는 상태는 어쩌면 로마서9장에서 말하는 거치는 돌이 아니겠는가. 나의 행위가 아닌, 나의 힘과 나의 지략이 아닌 오직 그 분께서 행해신다는 믿음에 근거한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롬9:33)
그런 의미에서 신발을 벗는다는 행위도 그 분의 영역에 들어선다는 것의 상징이고, 세상을 밟고 다녔던 무엇으로는 그 분 앞에 온전히 설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방에 들어서는 자가 신을 벗듯이 하나님이 거룩하다 하신 곳은 구별된 곳이고 정결한 곳이다. 거기서는 벌거벗은 나만이 있다. 벌거벗은 모습으로 마주하는 그 분의 음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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