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5일 월요일

唐四大女詩人


△薛濤

1. 아버지를 여의고 기생이 되다

장안(, 지금의 산시(西)성 시안(西)시) 출신으로, 자는 홍도()이다.
아버지 설운()은 당나라 조정의 관리로 학식이 높았다. 설운은 외동딸 설도를 몹시 아껴서 어릴 때부터 글과 시를 가르쳤는데, 총명했던 설도는 8~9세 무렵 아버지의 시에 대구를 할 만큼 시재가 뛰어났다. 당시 설운이 뜰 앞의 오래된 오동나무를 보고는 “뜰 앞의 오동나무 줄기가 구름을 향해 뻗쳤구나”라고 읊자 설도는 지체 없이 “가지는 남북을 오가는 새를 맞이하고, 잎사귀는 오가는 바람을 보내는구나”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아버지 설운은 강직한 성품으로 조정에서 서슴없이 직언하다 권세가들에 의해 촉(, 지금의 쓰촨()성)으로 쫓겨났는데, 그러고 몇 년 뒤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설도의 나이 14세 때의 일이었다. 남겨진 설도와 그녀의 어머니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했고, 설도가 16세 때 자신의 용모와 음악, 그리고 문장력을 빌려 이름을 악적(, 기생 명부)에 올리고 관기가 되었다.

2. 당대 4대 여시인

유채춘어현기, 이야()와 더불어 ‘당대4대 여시인()’으로 불린다. 또한 탁문군화예부인, 황아()와 더불어 ‘촉중사대재녀()’로 일컬어진다. 90여 수의 시가 남아 있다.
832년, 나이 64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듬해인 833년에 재상을 지낸 단문창()이 그녀를 위해 직접 묘지명을 짓고 묘비에 ‘서천여교서설도홍도지묘(西)’라고 썼다.

3. 문장으로 얻은 명성과 애정


설도는 또한 시인 원진과 애정을 나누며 100여 편의 연애시를 남겼다. 두 사람의 연애는 당시 큰 화제였다. 809년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31세의 원진이 감찰어사 신분으로 지방 순시를 갔다가 설도의 명성을 듣고 쓰촨 지역에 와서 그녀를 만났다.기생이 된 그녀의 명성은 금세 쓰촨성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문장 외에 명사들과 나눈 애정으로도 유명하다. 덕종 때 위고()가 사천안무사(使)로 쓰촨 지역을 다스리면서 그녀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는데, 그녀를 술자리에 불러 시를 짓게 하고는 여교서()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여기서 훗날 기생을 가리키는 ‘교서()’라는 단어가 유래했다.
당시 설도의 나이는 원진보다 11년 연상이었으나, 두 사람은 시를 통해 애정을 나누었다. 두 사람은 석 달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중년의 설도는 자신의 이상형인 젊은 원진에게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깊이 빠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애정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는데, 나이와 신분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진은 본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설도와 원진과의 애정은 그렇게 끝났다.
설도는 시를 써서 자신의 마음을 원진에게 전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그녀가 남긴 시 중에서 <춘망사()>라는 명시가 탄생했다. 그녀는 직접 만든 붉은 종이에 시를 써 보냈는데, 훗날 많은 사람이 이를 모방했다고 한다. 이 종이를 후세 사람들이 ‘설도전()’이라고 불렀다.
설도는 나이가 들어 악적에서 벗어났지만 주위의 숱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고 혼자 여생을 보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녀는 지금의 쓰촨성 청두()시의 서쪽 교외에 있는 완화계로 거처를 옮겼으나, 세상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아 다시 완화계를 떠나 벽계방()으로 옮겨 음시루()라는 누각을 짓고 인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4. 관련 유적

쓰촨성 청두시의 망강루공원()에 설도의 무덤과 그녀의 이름을 딴 우물 ‘설도정()’이 있다. 설도정의 물로 빚은 술은 ‘설도주()’라고 불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설도 [薛濤, Xuē Tāo] (중국인물사전, 한국인문고전연구소)

劉采春
회전() 사람으로 당()나라 때의 여성 예술가이자 문학가이다. 주계숭()의 처이며, 군희(, 군대에서 주로 하는 놀이)와 창가()에 능통했다. 원진()이 월주자사(), 절동관찰사(使)로 있을 때 그녀는 남편과 더불어 월주()로 와서 원진과 교류했다. 원진은 〈증유채춘()〉이란 시에서 그녀가 〈망부가()〉를 잘 부른다고 기술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채춘 [劉采春, liú cǎi chūn] (중국역대인물 초상화, 한국인문고전연구소)

魚玄機

1. 문학가 온정균과의 우정

장안(, 지금의 산시(西)성 시안(西)시) 호두() 출신으로 자는 혜란()이다. 본명은 어유미()였다.
5세 무렵부터 하규1)에서 공부했다. 10세 무렵에 집으로 돌아와 저명한 문학가 온정균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온정균과 망년지교(, 나이를 잊은 우정)를 맺었다. 이미 시에 능했던 그녀는 <매잔모단()>이란 작품을 지어 온정균에게 보여주었고, 온정균은 답례로 <제호두교거()>, <춘진여우입배씨임탐어간(竿)> 등의 시를 지었다.

2. 이억의 첩이 되고, 질투에 휘말리다

그녀가 14세에 이억()이란 인물이 장원 급제했는데, 그 광경을 숭진관()에서 보고 그를 찬미하는 시를 썼다. 당시 이억에게는 이미 정부인이 있었지만, 온정균이 중매하여 그녀는 이억의 첩이 되었다.
이억과의 애정이 점차 식고 정부인에게 용납받지 못하자, 24세에 장안 함의관()에서 출가하여 도사()가 되었다. 이때 어현기로 이름을 바꾸고 자유롭게 여러 명사들과 교유했다. 그런데 그녀의 시녀였던 녹교()가 자신이 좋아하던 사람과 연정을 나누자 질투심에 시녀를 때려 죽였다. 감옥에 갇힌 그녀는 본명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이름을 ‘우유현()’ 혹은 ‘어우현()’으로 바꿨다.
결국 사면받지 못한 그녀는 27세가 되던 871년에 처형되었는데, 그녀가 임종 전에 남긴 다음 시구는 천고의 절창으로 세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아무리 비싼 보물은 그래도 구할 수 있는데,()
마음에 맞는 낭군을 얻기는 정녕 어렵다네.()

3. 당나라의 사대 여시인 중 한 사람

그녀는 이야(), 설도유채춘과 더불어 ‘당대 4대 여시인()’으로 불린다. 그녀의 전기는 『당재자전()』 등에 기록되어 있다.
저서로 『어현기집()』이 있고, 작품은 현재 50여 수가 전하는데, 대표작으로 <강릉수망유기()>, <증린녀()> 등이 있다. 『전당시』에 여러 작품이 실려 있고, 『문원영화()』, 『당시기사()』 등에도 몇 편이 수록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어현기 [魚玄機, Yú Xuánjī] (중국인물사전, 한국인문고전연구소)


李冶
李冶(?---公元784年),字季兰(《太平广记》中作“秀兰”),乌程(今浙江吴兴)人,后为女道士,是中唐诗坛上享受盛名的女诗人[1]  。晚年被召入宫中,至公元784年,因曾上诗叛将朱泚,被唐德宗下令乱棒扑杀。
李冶与薛涛鱼玄机、刘采春并称“唐代四大女诗人”。[2]  诗以五言擅长,多酬赠谴怀之作,《唐诗纪事》卷七八有云:“刘长卿谓季兰为诗豪。”宋人陈振孙直斋书录解题》著录《李季兰集》一卷,今已失传,仅存诗十六首。

Share:

0 개의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