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시단에 이두를 넘을 자가 없는데, 태백의 시를 푼 자가 많지 않는 반면, 소릉의 시는 천가주라 하여 역대로 무수한 주석과 시평들이 넘쳐났으니, 분명 시는 이두라 하면서 배우는 이는 모두 두보이니 아이러니다.
혹자는 태백이 소릉보다 낫다고하고, 혹자는 시선이 시성의 시성다움을 넘을 수 없다하는데, 읽는 이의 끌리는 바가 달라 그러한가. 태백의 시에 초월적 경향, 중국문학사론이 흔히 말하는 낭만성이 주를 이루는 반면, 소릉의 시는 시사라하여 현실을 바탕하니, 두 시인의 중히 여기는 바가 범박히 말해 다르다고도 할 수 있을 성 싶다.
소릉의 시가 짠한 감정을 극단으로 밀고 가면서, 시어의 조탁이 겸해진다면, 태백의 시는 인간사 짠한 감정이 들려할 때, 떨쳐버리니 조탁이야 소릉보다 덜하지만 기세는 태백이 낫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간절함의 면에서 본다면 소릉의 시가 높다.
소릉의 시를 곰곰이 읽자면 어렵다. 술술 읽히는 시는 결코 아니란 말이다. 태백은 스스로가 맹호연을 그리워했듯,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다. 그러나 어려운 시라하여 안좋은 것도 아니고 쉬운 시라하여 다 좋은 것도 아니니, 시어의 난이를 가지고 시를 평할 수는 없다.
진짜 어려운 시는 시경의 시고, 진짜 어려운 글은 서경의 글들이고, 진짜 어려운 역사서는 좌전이다. 단순히 사어의 난삽함이나 생벽함만을 가지고 어렵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함축적이고 뜻 모를 부분들이 많기에 어렵게 느껴진다. 운문과 산문, 역사의 태두들이 모두 어렵고 무겁다는 것, 그 어려움에서 뭇시가 나오고 뭇글이 쏟아지며 정사들이 써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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