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7일 토요일

錢穆의 《孔子傳》


전목은 공자의 선세부터 공자의 죽음까지를 8장으로 나누고, 《論語》、《孟子》、《左傳》、《史記世家》를 바탕으로 공자의 사적을 추적 고증한다. 특기할 것은 총 25개의 疑辯을 통해 역대의 오류나 의심나는 점을 푸는 대목인데, 공자에 대한 역대의 단편적 이해를 넘어서 좀더 자세하고 합리적인 설명을 가하고 있는 점이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우리가 논어를 통해 인식하는 공자와 삼환의 대립은 매우 이분법적이고 다소 극단적이다. 즉 공자는 군자유며 삼환은 대부로서 월권이나 일삼는 추악한 무리 정도로 둘의 관계를 대별하는 따위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모종의 선입견이나 편견에 근거하여 공자를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금만 고찰해보면 공자가 삼환과의 대립각을 세우기 앞서 공자 자신도 삼환, 특히 계손씨와의 일정한 화합과 관계 설정 속에서 대사구에 오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양호나 공산불요와 이루어질뻔 했던 찜찜한 관계를 삼환이 모를리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공자는 삼환의 가신들과 모의해서 삼환을 처치하는 방법이 아닌 기회를 보며(사실적으로 말해, 삼환의 요구에 부합함으로써) 파격적 승진을 이루었고, 대사구라는 합법적 직책과 정책적 논의를 통해 삼환과의 공생과 노나라 예법의 재건으로 꾀했다.

삼도(三都 비(費)ㆍ후(郈)ㆍ성(成))를 덜어내려고 했던 사건도 공자의 일방적 밀어부침이라기보다는 전목의 고증대로라면 일종의 설득이 먼저 가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도를 무너뜨리는 일은 단순히 대부의 지위를 약화시킨다는 의미만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읍의 건재와 읍재의 세력 강화는 결국 삼환 자신들의 약화와 불안정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비읍의 장소적 중요성은 제나라와 연접해 있다는 점, 비읍이 없어지면 제군이 쉽게 침입할 것이라는 사실도 공자의 주장이 실현되기 어려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

제나라가 여악공 80여인을 보내 삼환을 문란하게 한 점도, 단순히 계환자가 여색에 빠져 국정을 팽개친 정도의 피상적 이해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공자와 계환자사이의 불화의 대목에 초점을 두고 읽는다면 삼환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錢穆는 <공자전>을 집필하기 앞서 이미 부록에서 설명한대로 《孔子傳略》을 통해 이 책을 수정 보충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전인의 문헌으로는 胡仔의 《孔子編年》、崔述의 《洙泗考信錄》、江永의 《鄉黨圖考》등을 근거로 선인들의 연구와 결과의 출입을 고증하고 선취하며 비교적 합리적 결과를 도출하려 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호자, 최술, 강용의 연구는 전목의 말대로 모두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호자의 《孔子編年》 서문에 그의 부친 胡舜陸이 말한대로, 공자의 삶과 사상을 가늠할 가장 유효한 문헌은 어찌됐든 <논어>다. (惟 《論語》為可信,足以證諸家之是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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