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일 월요일

詩卷과 卑鄙


孫光憲의 《北夢瑣言》에 당대(唐代) 李昌符에 관한 고사가 보인다. 과거보기 전 자신의 재능을 알릴 하나의 수단으로 당대 인사들은 시권을 돌렸다고 하는데, 정작 사서에서 이를 증명할만한 기록은 보이지 않고, 필기류 문헌에서만 몇 보일 뿐이다. 이창부는 매번 과거에 응했지만 낙방하기 일쑤였고, 고관과 시험관들에게 시권 돌리기에도 지친 이창부는 재미 겸 일종의 아이디어로 비복婢僕들에 관한 시 50수를 지었는데, 그것이 소위 대박을 터뜨려 시명을 날리게 된다. 시에 보면 춘낭이, 추국이, 춘화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들의 노비들이 등장하는데 그녀들은 모두 게으르고 뻔뻔하고 무능하다. 이창부는 일종의 하층민 특히 장안에 거하는 비복들의 모습을 상상으로 풍자함으로 재미를 유발했지만, 정작 시가 유행하자 장안의 수많은 비복들은 억울한 마음에 이창부의 귀싸대기를 때리고 싶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시권이 얼마나 보편적으로 통행되는 수단이었지는 알 수 없지만, 이창부의 시를 보면, 그것은 적어도 재미를 위한 글짓기와 단순한 재미가 아닌 자신의 재능을 진솔히 드러내는 글짓기로 구분되어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因出一奇라는 대목에서도 볼 수 있듯, 분명 시권은 단순한 재미를 위한 꽁트나 시시껄렁한 글짓기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시험관이 공무에서 딱딱하고 격식있는 글에 하루종일 지쳐있다  집에와서도 그런 글과 시가들을 완상할 것인가. 이창부의 靈機는 적중했고, 이로써 시명을 얻게 되었지만, 왜인지 문인의 씁쓸한 비루함을 면하지는 못했다.

李昌符詠婢僕

唐咸通中,前進士李昌符有詩名,久不登第。常歲卷軸,怠於裝脩。因出一奇,乃作《婢僕詩》五十首,於公卿間行之。有詩云:「春娘愛上酒家樓,不怕歸遲總不留。推道那家娘子臥,且留教住待梳頭。」又云:「不論秋菊與春花,個個能噇空肚茶。無事莫教頻入庫,一名閑物要㱔㱔編按:「些」之異體字。。」諸篇皆中婢僕之諱。浹旬,京城盛傳其詩篇,為奶嫗輩怪罵騰沸,盡要摑其面。是年登第。與夫桃杖、虎靴,事雖不同,用奇即無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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