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君君臣臣父父子子의 논리로 신앙을 점검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명정언순(名正言順)의 말씀대로, 이름은 그 실제와 부합해야함을 역설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이름을 위해 사람의 영혼을 소생시키셨고, 예수께선 그 분의 이름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임을 계시하셨다. 아들이라는 명칭은 천사들을 위해 있지 않고 미리 아신 바를 따라 부르신 인간들을 위해 있다. 우리가 누구의 아들이라고 밝힌다면, 결국 그 누구의 권위를 빌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응당 그에 걸맞는 실제를 드러내야한다. 나아가 이름의 문제는 중생 즉, 거듭남의 문제와 직결됨을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분을 아버지라 부를지라도 일( 事)은 이루어 질 수 없다.
2. 주역의 비괘와 태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양음의 정위됨이 오히려 부정, 불길하다는 사실이며, 하늘과 땅이 뒤엎어져있음이 뜻밖에 길하다는 아이러니다. 하늘이 하늘로서 상괘에만 머문다면, 땅의 땅됨은 그저 하괘에서 분리된 채 머물 뿐이다. 이러한 각자도생의 도식에서 교응과 상관은 드물다. 하지만, 땅이 하늘로 솟고, 하늘이 땅까지 뻗친, 그래서 땅이 위에 하늘이 아래에까지 자신을 낮춤의 모습은 교응과 상생의 정수박이에서 어떤 에너지가 넘친다고나 말할까.
태괘를 보면, 예수께서 왜 이 땅에 내려오셔야 했는지를 또한 풀 수 있다. 신의 인간됨은 결국 인간의 신 됨,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사건이며, 영원히 땅에 머물러 있어야할 인간이 그 분의 은혜로 하늘까지 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물과 창조 그리고 그리스도
易傳에 보면 역유태극 시생량의 량이생사상 사상생팔괘 라는 말이 나온다. 장자에도 태극과 육극에 대한 설이 보이며, 동의보감 내경편에도 태역, 태초, 태시, 태소의 설들이 보인다. 현대과학은 우주의 빅뱅과 초신성의 활동에 대한 가설들을 제시한다. 도대체 우리가 보는 이 모든 만물의 시원은 어디에서 있는가. 과학은 어쩌면 정직하다. 그것은 만물이 그냥 우연으로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 가설들을 통해 증명하고 싶어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태초의 수면과 예수의 가나 기적. 물에서 포도주로, 물에서 천치의 창조로. 동의보감의 진액편에서 말하는 물, 태일생수의 물.
4.‘태서(泰書 《서경》 주서(周書)의 편명임)’에 이르기를,“하늘과 땅은 만물의 부모요, 사람은 만물의 영장(靈長)이다.
5. 회남자 숙진편을 보면, 복희씨로부터 분별의 시작을 운운하는 대목이 나온다. 신농씨 황제에 이르면 사람들이 예와 법에 대한 인식이 이전 시대와 다르게 확연하게 구별됨을 알 수 있다. 도가는 이렇듯 분별하는 마음, 통치와 난리에 대한 인식을 세상의 부패와 혼탁함에 대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선악과, 그 알고자하는 마음,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의 모습이 동양학에서는 이런 분별심, 인식의 제고라는 모습으로 투영되지 않았을까.
6.맹자가 호연지기를 논하는 장에서, 是集義所生者,非義襲而取之也。行有不慊於心則餒矣。我故曰告子未嘗知義,以其外之也。의 논리와 로마서의 논리가 상통하는 점을 본다. 호연지기, 의, 믿음은 밖에서 襲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자질구레한 행위 몇 개로 커버될 수 없다. 물론 맹자야 호연지기의 주체를 인간으로만 한정했지만, 그것은 그저 그런 인간은 아니다. 호연지기는 안에서, 구체적으로 襲이 아닌 의의 자기 발현과 집적으로부터 발생한다면, 믿음 또한 의로의 이끌림이요, 감응이 아닐까. 맹자의 호연지기에 상응할 수 있는 크리스쳔의 상태를 무엇이라 말할까. 성령충만? 이신칭의의 인간상태?
6.맹자가 호연지기를 논하는 장에서, 是集義所生者,非義襲而取之也。行有不慊於心則餒矣。我故曰告子未嘗知義,以其外之也。의 논리와 로마서의 논리가 상통하는 점을 본다. 호연지기, 의, 믿음은 밖에서 襲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자질구레한 행위 몇 개로 커버될 수 없다. 물론 맹자야 호연지기의 주체를 인간으로만 한정했지만, 그것은 그저 그런 인간은 아니다. 호연지기는 안에서, 구체적으로 襲이 아닌 의의 자기 발현과 집적으로부터 발생한다면, 믿음 또한 의로의 이끌림이요, 감응이 아닐까. 맹자의 호연지기에 상응할 수 있는 크리스쳔의 상태를 무엇이라 말할까. 성령충만? 이신칭의의 인간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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