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5일 목요일

난설헌시집(蘭雪軒詩集)

한국고전번역원 해제

김기빈(金圻彬)

편찬및간행
저자의 시문은, 동생 許筠이 지은 跋文에 의하면, 매우 많았지만 遺命에 따라 소각하여 전하는 것이 매우 적은데 이것은 모두 許筠이 평소 암송한 것을 기록하여 편집해 놓은 데에서 나온 것이었다.
현전하는 「蘭雪軒詩集」에는 이른바 甲寅字 계열의 活字本, 刊記가 없는 목판본과 있는 목판본, 新活字本이 있다. 이 가운데 갑인자 계열의 활자본을 초간본으로 보는 데 대해 異論이 많은데, 목판본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굳이 활자본을 다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점과 〈染指鳳仙花歌〉, 〈廣寒殿白玉樓上樑文〉 등 목판본에 더 들어간 저작에 대해 許筠의 僞作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활자본을 초간본으로 보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許筠은 저자의 시집을 간행하고자 하여 일찍이 1591년(선조 24)에 柳成龍에게 序文까지 받았다. (惺所覆瓿稿 권20 上西厓相, 西厓集 권4 跋蘭雪軒集) 그러나 임란을 겪는 와중에 이 서문도 잃어버리고 간행도 추진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605년에 仲兄 許篈의 「荷谷集」을 遂安 郡守로 있으면서 목판으로 간행하는 등 世稿의 편찬과 간행에 주력하였는데, 이즈음 누이 난설헌의 詩稿도 편차하여 두었던 것 같다.
이후 1606년 1월에 許筠이 중국 사신 朱之蕃과 梁有年의 원접사 종사관이 되었는데, 朱之蕃에게는 3월 27일에 嘉山에서 머물 때 저자의 詩卷을 보여 주고 서문을 부탁하여 4월 20일 回程에 小引을 받았고, 梁有年에게는 4월 25일 回程에 世稿의 序를 부탁하였으나 미처 받지 못하고 그가 본국으로 돌아간 뒤 다시 한 질을 보내어 부탁해서 그해 12월에 지어 보내 준 題辭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두 사신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급히 활자본을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通文館藏本의 갑인자 계열 활자본은 바로 이 활자본에 小引과 題辭만을 새로 찍어 합쳐서 1606년 12월 이후 완성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초간본》
그 뒤 1608년(선조 41) 4월에 許筠은 公州 牧使로 있으면서 다시 칠언고시, 오언과 칠언 율시 및 부록으로 〈廣寒殿白玉樓上樑文〉 등을 더 넣어 再編하고 자신의 跋文을 덧붙여 목판본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중간본》 현재 규장각(想白古811. 53-H41n), 국립중앙도서관(위창古3648-文98-2)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후로는 1692년(숙종 18)에 東萊府에서 중간본을 저본으로 다시 시집을 간행하였다. 《삼간본》 이 삼간본에는 권말에 ‘崇禎後壬申東萊府重刊’이란 刊記가 판각되어 있는데, 이는 활자본을 초간으로 보지 않은 때문이다. 현재 규장각(想白古811. 53-H41n2), 국립중앙도서관(한45-가32, 일산古3644-75), 장서각(4-5833) 등에 소장되어 있다.
1912년에는 서울의 辛亥唫社에서 목판본의 훼손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고쳐서 新活字로 시집을 간행하였다. 《사간본》 이 사간본에는 짤막한 〈蘭雪軒傳略〉과 1912년에 중국의 吳自蕙가 쓴 跋이 붙어 있으며, 저자의 시를 次韻한 宣祖 때의 여류 시인의 시집인 「景蘭集」이 合附되어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위창古3648-文98-3)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저자의 시문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중국에서는 朱之蕃 등에 의해 널리 퍼져 朱彝尊의 「明詩綜」, 錢謙益의 「列朝詩集」 등에 抄選되었고, 일본에서도 임란 때 가져가 1711년 文台屋次郞에 의해 開版되기까지 하였다.
본서의 저본은 1608년에 간행된 중간본으로, 규장각장본이다. 영인 과정에서 小引, 題辭, 跋은 상태가 불량하여 동일본인 국립중앙도서관장본(위창古3648-文98-2)으로 대체하였다.
小引(朱之蕃 撰), 題辭(梁有年 撰), 跋(許筠 撰), 宣祖實錄 등에 의함

구성과내용
본 시집은 불분권 1책으로 총 39판이다.
권수에는 중국 사신 朱之蕃이 적은 小引과 梁有年이 지은 題辭가 실려 있다.
詩는 詩體別로 오언고시 5題, 칠언고시 5題, 오언율시 5題, 칠언율시 9題, 오언절구 9題, 칠언절구 16題 총 49題가 수록되어 있고, 부록 3편이 실려 있다. 오언고시의 〈寄荷谷〉, 칠언고시 전편, 오언율시와 칠언율시 전편, 부록의 〈廣寒殿白玉樓上樑文〉은 목판본으로 중간할 때 더 들어간 작품이다. 저자의 작품 특성에 관해서는 뛰어난 여류 시인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연구가 있었다. 樂府體의 시, 閨怨을 읊은 시, 肉親의 情을 읊은 시, 仙境의 理想鄕을 읊은 시 들이 많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 저자의 시에 대한 평가는, 저자 자신의 뛰어난 능력에 대해서는 다들 인정하면서도 저자의 시를 암송하여 편찬한 동생 許筠이 중국 시를 표절하거나 僞作하여 聲勢를 높이려 하였다는 등의 비난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金時讓은 「涪溪記聞」에서 〈送宮人入道〉의 두 구절이 중국 시의 표절임을 말하였고, 申欽은 「象村稿」권52에서 〈次孫內翰北里韻〉과 〈遊仙詞〉에 古人의 시가 태반이라고 하였고, 李睟光은 「芝峯類說」권14 文章部7 閨秀詩에서 〈染指鳳仙花歌〉, 〈遊仙詞〉, 〈送宮人入道〉 등이 명 나라 시인 작품의 표절이라 하고 一家인 참의 洪慶臣과 정랑 許𥛚이 ‘난설헌의 시는 2, 3편 외에는 모두 僞作이고, 〈廣寒殿白玉樓上樑文〉은 許筠이 李再榮과 함께 찬술한 것이다.’ 하였다는 말을 인용하였다. 金萬重도 「西浦漫筆」下에서, 사람들이 드물게 보는 원 나라나 명 나라 시인의 아름다운 시구를 집어넣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만중과 동시대에 살았던 南龍翼은 「壺谷詩話」에서, 格調를 볼 때 荷谷이 許筠보다 높고 저자가 하곡보다 높으니 허균이 저자에 미치지 못할 바라고 하여 허균의 위작설을 반박하였다.
맨 뒤에 許筠이 1608년에 重刊하면서 지은 跋文이 있다.


蘭雪齋詩集小引

朱之蕃
閨房之秀。擷英吐華。亦天地山川之所鍾靈。不容施。亦不容遏也。漢曹大家成敦史以紹家聲。唐徐賢妃諫征伐以動英主。皆丈夫所難能而一女子辦之。良足千古矣。卽彤管遺編所載。不可縷數。乃慧性靈襟不可泯滅。則均焉。卽嘲風咏月。何可盡廢。以今觀於許氏蘭雪齋集。又飄飄乎塵埃之外。秀而不靡。沖而有骨。遊仙諸作。更屬當家想其本質。乃雙成飛瓊之流亞。偶謫海邦。去蓬壺瑤島。不過隔衣帶水。玉樓一成。鸞書旋召。斷行殘墨。皆成珠玉。落在人間。永光玄賞。又豈叔眞易安輩悲吟苦思。以寫其不平之衷。而總爲兒女子之嘻笑顰蹙者哉。許門多才。昆弟皆以文學重於東國。以手足之誼。輯其稿之僅存者以傳。予得寓目。輒題數語而歸之。觀斯集。當知予言之匪謬也。
萬曆丙午孟夏廿日。朱之蕃書於碧蹄館中。

蘭雪軒集題辭

梁有年
余使朝鮮。禮賓寺許副正。出其世稿索余言。而稿目中有蘭雪集。則其故姊氏所著云。會趨程。未及錄示。余旣歸 朝。端甫寄余一帙。展誦廻環。其渢渢乎古先。飄飄乎物外。誠匪人間世所恒有者。余於是益信東國山川之靈。孕毓有餘。許氏家門之瑞。長發不匱。弗獨偉丈夫輩出之爲烈者。唐永徽初。新羅王眞德。織錦作太平詩以獻。載入唐音。至今膾炙相傳。謂爲其先王眞平之女。然則女中聲韻。在東方從來旣遠。而蘭雪集。尤其趾美獨盛者哉。采以附諸 皇明大雅。流傳萬葉。厥有史氏在矣。
萬曆丙午嘉平旣望。 賜進士出身。文林郞刑科都給事中。前翰林院庶吉士 欽差朝鮮副使
賜一品服南海梁有年書稿。


蘭雪軒詩集跋

許筠
夫人姓許氏自號蘭雪軒。於筠爲第三姊。嫁著作郞金君誠立。早卒無嗣。平生著述甚富。遺命茶毗之。所傳至尠。俱出於筠臆記。恐其久而愈忘失。爰災於木。以廣傳云。時萬曆紀元之三十六載孟夏上浣。弟許筠端甫。書于披香堂。


遣興 

梧桐生嶧陽。幾年傲寒陰。幸遇稀代工。劚取爲鳴琴。琴成彈一曲。擧世無知音。所以廣陵散。終古聲堙沈。

鳳凰出丹穴。九苞燦文章。覽德翔千仞。噦噦鳴朝陽。稻梁非所求。竹實乃其飡。奈何梧桐枝。反棲鴟與鳶。

我有一端綺。拂拭光凌亂。對織雙鳳凰。文章何燦爛。幾年篋中藏。今朝持贈郞。不惜作君袴。莫作他人裳。

精金凝寶氣。鏤作半月光。嫁時舅姑贈。繫在紅羅裳。今日贈君行。願君爲雜佩。不惜棄道上。莫結新人帶。

近者崔白輩。攻詩軌盛唐。寥寥大雅音。得此復鏗鏘。下僚困光祿。邊郡愁積薪。年位共零落。始信詩窮人。

仙人騎綵鳳。夜下朝元宮。絳幡拂海雲。霓衣鳴春風。邀我瑤池岑。飮我流霞鐘。借我綠玉杖。登我芙蓉峯。

有客自遠方。遺我雙鯉魚。剖之何所見。中有尺素書。上言長相思。下問今何如。讀書知君意。零淚沾衣裾。

芳樹藹初綠。蘼蕪葉已齊。春物自姸華。我獨多悲悽。壁上五岳圖。牀頭參同契。煉丹倘有成。歸謁蒼梧帝。



廣寒殿白玉樓上樑文


述夫。寶蓋懸空。雲輧超色相之界。銀樓耀日。霞楹出迷塵之壺。雖復仙螺運機。幻作璧瓦之殿。翠蜃吹霧。噓成玉樹之宮。靑城丈人。玉帳之術斯殫。碧海王子。金櫝之方畢施。自天作之。非人力也。主人名編瑤籍。職綴瓊班。乘龍太淸。朝發蓬萊暮宿方丈。駕鶴三島。左挹浮丘右拍洪厓。千年玄圃之棲遲。一夢人間之塵土。黃庭誤讀。謫下無央之宮。赤繩結緣。悔入有窮之室。壺中靈藥。纔下指於玄砂。脚底銀蟾。遽逃形於桂字。咲脫紅埃赤日。重披紫府丹霞。鸞笙鳳管之神遊。喜續舊會。錦幕銀屛之孀宿。悔過今宵。胡爲日宮之思綸。俾掌月殿之牋奏。官曹淸切。足踐八霞之司。地望崇高。名壓五雲之閣。
寒生玉斧。樹下之吳質無眠。樂奏霓裳。欄邊之素娥呈舞。玲瓏霞佩。振霞錦於仙衣。熠燿星冠。點星珠於人勝。仍思列仙之來會。尙乏上界之樓居。靑鸞引玉妃之車。羽葆前路。白虎駕朝元之使。金綅後塵。劉安轉經。拔雙龍於案上。姬滿逐日。駐八風於山阿。宵迎上元。綠髮散三角之髻。晝接帝女。金梭織九紋之綃。瑤池衆眞會南峯。玉京群帝集北斗。唐宗踏公遠之杖。得羽衣於三章。水帝對火仙之棋。賭寰宇於一局。不有紅樓之高構。何安絳節之來朝。於是。移章十洲。馳檄九海。囚匠星於屋底。木宿掄材。壓鐵山於楹間。金精動色。坤靈揮鑿。騁巧思於般倕。大冶鎔鑪。運奇智於錘範
靑赮垂尾。雙虹飮星宿之河。赤霓昂頭。六鼇戴蓬萊之島。璇題燭日。出彤閣於煙中。綺綴流星。架翠廊於雲表。魚緝鱗於玉瓦。雁列齒於瑤階。
微連捧旂。下月節於重霧。鳧伯樹纛。設蘭幄於三辰。金繩結綺戶之流蘇。珠網護雕欄之阿閣。仙人在棟。氣吹彩鳳之香臺。玉女臨窓。水溢雙鸞之鏡匣。翡翠簾雲母屛靑玉案。瑞靄宵凝。芙蓉帳孔雀扇白銀床。祥蜺晝鎖。爰設鳳儀之宴。俾展燕賀之誠。旁招百靈。廣延千聖。邀王母於北海。斑麟踏花。接老子於西關。靑牛臥草。
瑤軒張錦紋之幕。寶簷低霞色之帷。獻蜜蜂王。紛飛炊玉之室。含果雁帝。出入薦瓊之廚。雙成鈿管晏香銀箏。合鈞天之雅曲。婉華淸歌飛瓊巧舞。雜駭空之靈音。龍頭瀉鳳髓之醪。鶴背捧麟脯之饌。琳筵玉席。光搖九枝之燈。碧藕氷桃。盤盛八海之影。獨恨瓊楣之乏句。繄致上仙之興嗟。淸平進詞。太白醉鯨背之已久。玉臺摛𦸂。長吉咲蛇神之太多。新宮勒銘。山玄卿之雕琢。上界鐫壁。蔡眞人之寂寥。自慙三生之墮塵。誤登九皇之辟剡。江郞才盡。夢退五色之花。梁客詩催。鉢徹三聲之響。徐援彤管。咲展紅牋。河懸泉湧。不必覆于安之衾。句麗文遒。未應頮세수할 회謫仙之面。立進錦囊之神語。留作瑤宮之盛觀。置諸雙樑。資於六偉。
拋梁東。曉騎仙鳳入珠宮。平明日出扶桑底。萬縷丹霞射海紅。拋梁南。玉龍無事飮珠潭。銀床睡起花陰午。咲喚瑤姬脫碧衫。拋梁西。碧花零露彩鸞啼。春羅玉字邀王母。鶴馭催歸日已低。拋梁北。溟海茫洋浸斗極。鵬翼擊天風力掀。九霄雲垂雨氣黑。拋樑上。曙色微明雲錦帳。仙夢初回白玉床。臥聞北斗廻杓響。拋樑下。八垓雲黑知昏夜。侍兒報道水晶寒。曉霜已結鴛鴦瓦。伏願上樑之後。琪花不老。瑤草長春。曦舒凋光。御鸞輿而猶戲。陸海變色。駕飆輪而尙存。銀窓壓霞。下視九萬里依微世界。璧戶臨海。咲看三千年淸淺桑田。手回三霄日星。身遊九天風露。

“대저 보옥으로 만든 일산(日傘)이 창공에 걸려 있으매 구름 같은 수레는 색상(色相)의 세계를 초월하였고, 은으로 만든 누각이 햇빛에 번쩍거리매 노을 같은 들보는 티끌 같은 속세(俗世)를 벗어났도다.
신선이 부는 소라로 기틀을 운용하여 구슬 기와의 전각을 만들었으며, 푸른빛의 입술로 안개를 불어 내어 옥기둥의 궁궐을 지었도다. 청성장인(靑城丈人)은 옥휘장을 만드는 기술을 다하였고, 벽해왕자(碧海王子)는 금궤짝을 만드는 방술을 다하였도다. 이것은 하늘이 만들어 낸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것은 아니도다.
누각 주인의 이름이 신선들의 명부에 실려 있고, 관직이 신선들의 반열에 들어 있도다. 용을 타고 태청궁(太淸宮)으로 향하매 아침에 봉래산(蓬萊山)을 떠나 저녁에 방장산(方丈山)에 묵으며, 학을 타고 삼도(三島)로 향할새 왼편으로는 부구산(浮邱山)을 잡아당기고, 오른편으로는 홍애(洪厓)를 치도다.
천년 세월도 현포(玄圃)에서는 짧은 머묾이요, 하룻밤 꿈도 인간 세상에서는 한낱 티끌이도다. 《황정경(黃庭經)》을 잘못 읽은 탓에 무앙(無央)의 궁궐로 귀양을 내려왔고, 적승(赤繩) 노파가 인연을 맺어 주매 잘못 유궁씨(有窮氏)의 배필이 되었도다. 단지 속에 영묘한 약이 있으매 이제 막 현사(玄砂)에 손이 내려가는데, 발밑의 은 두꺼비는 갑자기 계우(桂宇) 속으로 도망치도다.
웃으면서 붉은 먼지와 붉은 해에서 벗어나고, 다시금 자부(紫府)의 붉은 노을을 헤치도다. 신선은 난새의 피리와 봉새의 젓대를 불면서 노니매 옛날의 만남을 이어 가는 것을 기뻐하고, 청상과부는 비단 휘장이 드리우고 은병풍이 펼쳐진 방에 묵으매 이 밤이 지나가는 것을 한스러워 하도다.
어찌해야 일궁(日宮)의 은륜(恩綸)을 짓고, 월전(月殿)의 전주(牋奏)를 관장하게 하리오. 관청이 깨끗하매 발은 팔하(八霞)의 관사(官司)를 밟았으며, 지망(地望)이 높으매 이름은 오운(五雲)의 전각(殿閣)을 눌렀도다.
찬 기운이 옥도끼에서 생겨나매 계수나무 아래의 오질(吳質)은 잠을 못 이루고, 풍악이 예상곡(霓裳曲)을 연주하매 난간 가의 소아(素娥)가 춤을 추도다. 영롱한 하패(霞佩)를 차니 노을 비단이 선의(仙衣)에 찬란하고, 번쩍이는 성관(星冠)을 쓰니 별 구슬이 인승(人勝)에서 반짝이도다. 이어 여러 신선들이 몰려올 것을 생각하니, 오히려 하늘나라의 누각이 모자라는도다.
청란(靑鸞)이 선녀가 탄 수레를 끌고 오매 깃털 장식이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백호(白虎)가 조회하러 오는 사자를 태우고 오매 금색 수술이 뒤에서 티끌을 일으키도다.
유안(劉安)은 경문(經文)을 읽으면서 책상 위에서 쌍룡검(雙龍劍)을 뽑았으며, 희만(姬滿)은 해를 쫓아가 산골짜기에서 팔풍(八風)을 머물렀도다.
밤중에 상원부인(上元夫人)을 맞이하매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세모지게 틀었으며, 낮에 제녀(帝女)를 만나 보매 금북으로 아홉 무늬의 비단을 짜고 있도다.
요지(瑤池)의 여러 신선들은 남쪽 봉우리에 모였고, 옥경(玉京)의 여러 제왕들은 북두성(北斗星)에 모였도다.
당종(唐宗)은 공원(公遠)의 지팡이를 밟았다가 신선 옷을 삼장(三章)에서 얻었고, 수제(水帝)는 화선(火仙)과 바둑을 두는데 온 우주를 한판 바둑에 걸고 두었도다.
붉은 누각이 높이 솟아 있지 아니하면 어찌 강절(絳節)이 편안하게 조회를 오게 할 수 있겠는가. 이에 십주(十洲)에 글발을 돌리고 구해(九海)에 격문을 띄웠도다.
지붕 아래에다가 장성(匠星)을 가두어 놓으매 목수(木宿)가 재목을 가려서 취하고, 서까래 사이에다가 철산(鐵山)을 눌러 놓으매 금정(金精)이 빛을 동하는도다. 곤령(坤靈)이 휘둘러 파내니 반수(般倕)보다도 더 교묘한 생각이 치달리고, 대야(大冶)가 용광로에서 녹이매 도가니와 형틀에서 기묘한 지혜를 운용하였도다.
푸른 노을이 꼬리를 드리우니 쌍무지개가 성수(星宿)의 강물을 마시고, 붉은 무지개가 머리를 쳐드니 여섯 자라가 봉래(蓬萊)의 섬을 머리에 이었도다. 구슬로 밝은 햇빛을 비추자 붉은 누각이 안개 속에서 나타나고, 비단으로 흐르는 별을 잇자 푸른 회랑이 구름 밖에 가로지르는도다. 물고기는 구슬 기와에서 은빛 비늘을 가지런히 하였고, 기러기는 구슬 계단에서 부리를 가지런하게 하였도다.
미련(微連)이 깃발을 들매 짙은 안개 속에서 월절(月節)이 내려오고, 부백(鳧伯)이 깃발을 세우매 삼진(三辰)에서 난초 장막을 베풀었도다. 황금의 새끼줄로 비단으로 만든 집 수술을 묶었고, 구슬의 그물로는 아로새긴 난간을 단 누각을 얽어매었도다.
선인(仙人)이 마룻대에 있으매 기운은 아름다운 봉새가 새겨진 향대(香臺)에 불고, 옥녀(玉女)가 창문에 있으매 물은 두 마리 난새가 새겨진 경대(鏡臺)에 넘실대도다.
비취(翡翠)의 주렴, 운모(雲母)의 병풍, 청옥(靑玉)의 책상에는 상서로운 안개가 밤에 엉기었고, 부용(芙蓉)의 장막, 공작(孔雀)의 부채, 백은(白銀)의 소반에는 상서로운 무지개가 낮에 서리었도다.
이에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축하하는 정성을 펴게 하고자, 주위에 있는 온갖 신령을 부르고 멀리 있는 여러 성인들을 초청하였도다. 서왕모(西王母)를 북해(北海)에서 맞으니 아름다운 기린(麒麟)이 꽃을 밟고, 노자(老子)를 서관(西關)에서 만나 보니 푸른 소가 초원에 누웠도다. 
옥으로 만든 용마루에는 비단 무늬의 장막을 둘러쳤고, 보석으로 만든 처마에는 노을 빛깔의 휘장이 드리워졌도다. 꿀을 바치는 벌들의 왕은 구슬 밥을 짓는 주방에 어지러이 날고, 과일을 물고 있는 기러기의 우두머리는 옥을 바치는 부엌에 드나드는도다.
쌍으로 된 보배 피리와 향기가 어린 은아쟁은 균천(鈞天)의 고아한 악곡(樂曲)을 합주하고, 아름다운 소리의 맑은 노래와 구슬이 날리는 교묘한 춤은 허공을 놀래키는 신령스러운 음악 소리에 뒤섞이도다.
용의 머리에서는 봉황의 골수로 빚은 술이 쏟아지고, 학의 등에는 기린의 포로 만든 술안주를 싣고 있도다. 구슬자리와 옥방석이 놓여 있으매 구지(九枝)의 등불이 빛을 반짝이고, 푸른 연뿌리와 얼음 복숭아가 담겨 있으매 팔해(八海)의 그림자가 소반에 가득 담겼도다.
그런 중에도 옥으로 된 현판에 누각 이름이 빠진 것이 한스러워서 신선들의 탄식을 자아내게 하는도다.
청평조(淸平調)를 지어 바쳤던 이태백(李太白)은 고래 등에서 취한 지가 이미 오래이고, 백옥루(白玉樓)에서 글을 짓던 이장길(李長吉)은 사신(蛇神)이 너무 많은 것을 웃었도다. 새 궁궐에 명(銘)을 새긴 것은 산 현경(山玄卿)의 문장 솜씨인데, 천상 세계에 옥비석을 새길 만한 채 진인(蔡眞人)이 없도다.
스스로 삼생(三生)의 속세(俗世)에 사는 것이 부끄럽다가, 잘못 구황(九皇)의 벽섬(辟剡)에 올랐도다. 강랑(江郞)이 재주가 궁해지니 오색(五色)의 꽃이 꿈속에 시들었고, 양객(梁客)이 시를 재촉하니 삼성(三聲)의 소리가 바리때에 울려 퍼지는도다. 
천천히 붉은빛의 붓대를 잡고, 웃으면서 붉은색깔의 종이를 펼치는도다. 폭포 같은 시문과 샘솟는 듯한 문장은 자안(子安)의 이불을 덮어쓸 필요가 없으며, 아름다운 구절과 힘찬 문장은 적선(謫仙)의 얼굴을 씻지 않아도 되겠도다. 금낭(錦囊)의 신령스러운 말을 그 자리에서 지어 올리어, 요궁(瑤宮)의 성대한 모습을 형용해 남기었도다.
이에 이 글을 두 대들보에다 두어서 육위(六偉)가 동하는 것을 돕는도다.

어기여차 떡 던져라, 들보 머리 동쪽 보니 / 抛樑東
새벽녘에 봉황 타고 신선 주궁 들어가네 / 曉騎仙鳳入珠宮
아침 해가 부상의 아래에서 떠오르니 / 平明日出扶桑底
만 갈래의 붉은빛이 바다 붉게 물들이네 / 萬縷丹霞射海紅

어기여차 떡 던져라, 들보 머리 남쪽 보니 / 抛樑南
옥룡이 한가로이 구슬 못물 마시누나 / 玉龍無事飮珠潭
은침상서 잠을 깨자 꽃 그늘진 한낮인데 / 床睡起花陰午
웃으면서 요비 불러 푸른 적삼 벗게 하네 / 笑喚瑤妃脫碧衫

어기여차 떡 던져라, 들보 머리 서쪽 보니 / 抛樑西
푸른 꽃은 떨어지고 오색 난새 우는구나 / 碧花零露彩鸞啼
비단에다 글 써 보내 서왕모를 초청하고 / 春羅玉字邀王母
학을 타고 돌아올 제 날이 이미 저물었네 / 鶴馭催歸日已低

어기여차 떡 던져라, 들보 머리 북쪽 보니 / 抛樑北
바닷물이 아득하여 북두칠성에 잠겼구나 / 溟海茫洋斗極
대붕새가 하늘 박차 바람을 일으키니 / 鵬翼擊天風力掀
구천 하늘 먹구름이 뒤덮여서 컴컴하네 / 九霄雲垂氣黑

어기여차 떡 던져라, 들보 머리 윗쪽 보니 / 抛樑上
새벽빛 희미하여 비단구름 드리웠네 / 曙色微明雲錦帳
신선 꿈을 백옥 침상 위에서 깨어서는 / 仙夢初回白玉床
북두칠성 자루 도는 소리 누워 듣는구나 / 臥聞北斗回杓響

어기여차 떡 던져라, 들보 머리 아래 보니 / 抛樑下
팔해에는 구름 덮여 어두운 밤이구나 / 八垓雲黑知昏夜
계집종이 수정 주렴 차다고 와 말하는데 / 侍兒報道水晶寒
새벽 서리 원앙의 기와에 맺혔구나 / 曉霜已結鴛鴦瓦

삼가 바라건대, 상량(上樑)한 뒤에는 구슬꽃은 늙지 않고 구슬풀은 사시장철 꽃다워지게 하소서. 해와 달은 빛이 시들어도 난여(鸞輿)를 몰아 오히려 놀고, 육지와 바다는 색이 변하여도 바람 수레를 몰아 오히려 남아 있게 하소서. 은창문이 노을을 눌러 아래로 아득히 먼 구만 리 세계를 굽어보고, 구슬문이 바다에 임하여 웃으면서 삼천 년마다 뽕나무 밭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하소서. 손으로는 삼소(三霄)의 해와 별을 돌리면서, 몸은 구천(九天)의 바람과 이슬 속에 노닐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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